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季刊誌 北朝鮮内部からの通信〜リムジンガン 第2号・夏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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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_new.gif北朝鮮―名目だけの「無料教育」 負担増に悩む親 1 リムジンガン
政治は腐敗し、経済は破綻、社会は無秩序に陥って久しい北朝鮮だが、もう一つ深刻な問題がある。それは国家と民族百年の大計たるべき教育である…

ico_new.gif北朝鮮不動産取引の怪 リムジンガン
〈インタビュー〉国家住宅はこうして売買される 3
複雑化する取引形態
石丸:住宅売買には他にどんな形態があるか?
リ:住宅売買の別の形式として、国家住宅の利用を許可されている人が、他人にその利用許可権を分けて…

ico_new.gif北朝鮮―二〇〇七年夏に行われた二つの公開処刑 上[事件・事故][若者の声] リムジンガン
シム・ウィチョン記者は平安南道平城(ピョンソン)市に住む四〇代の男性と、平壌市に住む三〇代の男性と会い、最近、順川(スンチョン)と元山(ウォンサン)で起きた事件について取材した…

ico_new.gif北朝鮮―19歳女性の学生時代 学校生活から恋愛まで 3[若者の声] リムジンガン
卒業後
ワン:軍隊には大勢行くのかい?
ギョンエ:うちのクラスは男子が三〇名いたんですが、二〇名は行って、あとの一〇名は行けなかったんです…

ico_new.gif北朝鮮不動産取引の怪 リムジンガン
〈インタビュー〉国家住宅はこうして売買される 2
「国家住宅」をどのように「売買」するのか?
石丸:国家住宅の売買価格はどうやって決まるのか?
リ:実質的に国家住宅を売買するということは何を意味するのか。それは入舎証と個人の金が交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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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初!脱北者ぱく・よんの<北朝鮮とニッポンと>5

私はなぜ北朝鮮を脱出したのか 第4回


一部に、北朝鮮で起きたこの(90年代後半)社会パニックは、自然災害などによる食糧生産量減少に原因があると主張する“食糧不足説”がある。
もちろん、これも一般的には、現象に対する理論的または分析的な見解の一つになるかもしれない。
だが、私は経験によって、全面的にこれを否定したい。


餓死すること、違法行為をすること、コチェビになることは、社会的にみるとまさに強要であった。
どんな研究調査によっても、コチェビあるいは脱北者になることを、自然災害によって個人が選択したとはみなせないだろう。
次の二つの事実はパニックの“食糧不足起因説”を明確に否定している。


第一に、北朝鮮は食糧に対する国家独占配給制度を94年まで長年維持実施してきた世界唯一の国だ。
一般的に、戦争や災害によって食糧が不足した時、国家が一時的に運営する非常時の制度が、まさに配給制である。これは誰もが皆知る常識である。


北朝鮮の建国以来続いた配給制の実施自体が、90年代の一時的な‘食糧不足説‘を否定している。
数字的には、すでに70年代から全国で、15日ごとにある配給から2日分の配給量を厳格に削減していた。
即ち、全国所要供給量の13%以上が不足している事態を国家が認めて、強い緊縮政策を執行してきたのである。

その深刻性は、金日成国家主席自らが“農業司令官”になって食糧増産に立ち上がり、「ご飯を食べる者ならば、すべての者を農作業に動員すべし」を義務化した“主体農法”政策を実施するほどであった。


一般的に1年の4か月間は、全国ですべてが農村に集中動員された。住民の移転も、農村への一方向にだけ厳しく制限され、都市住民を系統的に農村に強制移住させた。
生産者である農民ですらも、穀物だけは配給制に束縛された。購入経路のいかんを問わず、穀物2重受給(各自が国家供給規定量以上をえることを意味する)は、銃殺刑に該当した。
それほど厳重に制定され、管理されていたのたが配給制なのである。


在日朝鮮人の訪問団が来ても、彼らが消費する食糧分は特別に海外同胞迎接総局が食糧政策総局に依頼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仮に、このような国家食糧政策制度が、変わらず健全に機能していたならば、たとえ予想外の災害によって食糧生産量の不足が生じても、農民市場に売り出すほどの個人が米を隠匿備蓄することはとうてい不可能だし、また独占物資である穀物の自由販売現象を許すこともなかったであろう。また、餓死者が発生し、また軍人が栄養失調で廃人になるようなことは絶対起こらなかっただろう。
国際支援による復旧効果も、どの国のケースより迅速で能率的に現れただろう。


第二に、食糧の不足でパニックが発生したと見ては、「首領も“金日成民族”も存在しなかった」とする、現実否定の立場に陥ってしまう。世界が目撃しショックを受けたように、首領の死亡で受けた北朝鮮と人民の打撃は甚大だった。


今でも亡くなった首領が“永生”するとしている北朝鮮の認識からも分かるように、金日成の死は、その死亡を否定したり、あるいは自らの人格が喪失されたりするほど衝撃的だったので、全社会の一時的混乱、あるいは制度が崩れたといっても、それは歴史的にも世界的にも何の不思議もないことだろう。


社会主義国家の歴史的経験を見ても、スターリンの死亡後のソ連では、新しく修正主義路線が出たし、毛沢東の死亡以後中国では開放改革路線が出発した。先行の時代を差別化し、それ以前の時代のライフ・サイクルに生存した偉人の名前で歴史の一幕を終わらせたのである。


いくら否定しても、北朝鮮でもそのような‘偉人現象‘は現れたのである。すなわち、その表面的な最大の特徴が、まさにコチェビの大量発生であった。それを首領の死亡抜きで理解することも、説明することもできないのである。


1991年に社会主義政権が崩壊したソ連で、コチェビの大群が発生したと、他ならぬ北朝鮮が大宣伝し、その原因は国家制度の破壊にあると冷静に解釈した。そして、だからこそそのような破壊から国を守ろうと訴えた。
皮肉にも、その後北朝鮮で悲惨なコチェビの大群が発生した。北朝鮮の国家制度が破壊したと見なくても、確かにそれは金日成首領死亡直後から発生したのは動貸せない事実である。北朝鮮がソ連の社会主義崩壊のときに大宣伝したのと匹敵する出来事が北朝鮮でも発生したのである。


その原因は疑う余地もなく首領の死亡であった。その結果、国家の食糧配給制などが崩れて、食糧分配に危機が発生したのだ。その末端の現象として、弱者のコチェビの大群が発生したのであった。

일부 견해에, 북조선에서 일어난 이 위기가 자연재해 등에 의한 식량생산량 감소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부족설”이 있다. 물론 이것도 일반적으로 현상에 대한 리론적 또는 분석적 견해의 한가지로서는 타당한 주장일수 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는 전적으로 이를 부정한다. 아사나 위법, 코체븨의 선택은 사회적 요구였던 것이다. 연구조사가, 현존하는 대량의 코체븨 내지 탈북자를 즐겨 선택한 개인을 열심히 찾을 필요는 없을것이다.


다음의 두 가지 명백한 사실도 이 “부족설”을 부정하고 있다. 첫째로, 북조선은 현시대에도 식량에 대한 국가독점 배급제도를 94년까지 유지 실시하여 온 유일한 나라이다. 전쟁이나 재해로 인하여 식량이 부족할 때, 국가가 일시적으로 수립하는 비상제도가 바로 배급제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북조선 건국 이래 계속된 배급제의 실시 자체가 90년대 일시적 식량 “부족설”을 부인한다. 수자적으로 본다면 벌써 7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보름주기에 이틀배급을 량정상 삭제하였다. 즉 전국 소요 공급량의 13%이상 부족을 국가가 인정하고 강한 긴축정책을 집행하였던 것이다. 그 심각성은 김일성 국가주석이 단연 “농업사령관”으로 되고 식량증산에 나서서 “밥을 먹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농사에 동원”될것을 의무화한 “주체농법”정책을 실시할 정도였다. 보통 년간4개월은 전국이 다 농촌에 집중동원되였다. 주민이전도 농촌 일방향적으로만 엄단하고 도시주민은 계통적으로 농촌에 강제 이주시켰다. 생산자인 농민들도 곡물만은 배급제에 구속시켰다. 구입경로 여하를 불문하고 곡물 2중 수급(각자 국가 공급노르마 이상의 획득)은 총살형에 해당, 그만큼 엄중히 제정, 관리되여 있었다.


재일조선인 방문단이 오면 그들이 소비할 식량분은 특별히 해외동포 영접총국이 량정총국에 의뢰하여야 했다. 만약 이 국가 량정제도가 여전히 건전하다면, 설사 불의의 재해로 인하여 식량부족 타격이 도래해도, 농민시장에 내다 놓을만한 개인 저축미 준비란 도저히 불가능하며, 또 독점물자 곡물의 자유판매 현상도 허용할수 없으며, 아사자가 사회에 발생하고 군인들이 영양실조로 페인이 되는 일은 일어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제지원의 복구효과도 그 어느 나라보다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둘째로, 식량이 부족으로 위기가 발생하였다는 것은, 수령도 “김일성민족”도 없었다고 보는 현실부정적 립장에 빠진다. 온 세상이 목격하고 감동도 하였지만 수령의 사망에서 받은 북조선과 인민의 타격은 심대하였다. 수령이 “영생”한다고 하는 북조선의 주장에서도 알수 있는바와 같이 사망을 부정하거나 혹은 곧 자기의 인격상실로 여길 정도로 충격적이였기에, 온 사회가 일시적으로 혼란 혹은 이런 저런 제도들이 붕괴된다고 하여도,


그것은 력사적으로 보나 세계적으로 보아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력사경험을 보아도 스타린의 사망후 소련에서는 새로 수정주의 로선이, 모택동의 사망 이후 중국에는 개방개혁이 출발함으로써, 다 명실공히 선행시대들을 차별화하여 그 이전 시대의 일생에 생존한 위인의 이름으로 력사의 한 장을 결속하였다. 아무리 부정하여도, 북조선에서도 그 위인 증명이 나타난 것이다. 즉 표면적인 최대의 특징이 바로 코체븨의 대량 발생인바, 만약 수령의 사망을 제껴 놓고 그것은 리해할수도, 설명할수도 없다.

1991년 사회주의가 붕괴된 소련에서 코체븨 대군의 발생을 바로 북조선은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원인은 국가제도의 파괴에 있다고 랭정히 해석하였고, 따라서 그러한 파괴로부터 나라를 지키자고 호소하였다. 그 후 북조선에서도 비참한 코체븨 대군이 발생하였다. 조선의 국가제도가 파괴되였다고는 보지 않아도, 틀림 없이 수령 서거이후에 발생하였다는것은 부동의 사실이다. 그 선전대로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 것과 맞먹는 사변이 조선에서도 발생한것이다.

그것은 의심할바 없이 수령의 사망이며, 결과 국가의 식량 배급제도 등이 무너지고 따라서 식량분배 위기가 발생, 그 표현으로 코체븨 대군이 발생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