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mjingang-No2-hs-s.jpg
季刊誌 北朝鮮内部からの通信〜リムジンガン 第2号・夏号
ご注文はこちらへ


ico_new.gif北朝鮮―「表現の自由、言論の解放が必要です」[若者の声] リムジンガン
23歳青年が考える祖国の発展の条件 2
中国のような改革を
リム 中国と聞いて思い浮かぶものは?
キム 中国は朝鮮と同じ社会主義国だが、特色ある社会主義国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しかし、看板は社会主義国でも…

ico_new.gif北朝鮮経済官僚極秘インタビュー リムジンガン
我が国の経済動向 13
「人は飢えとは妥協できない」
ケ・ミョンビン:さて、その食糧専売制の結果はどうだったのか? それは食糧供給体制を、決して以前の「配給制」に戻そうとするものではなかった…

ico_new.gif北朝鮮―映像取材ルポ 平安北道朔州(サクジュ)郡を行く 2 リムジンガン
[解説]辺境の軍需産業都市は寂獏としていた(承前)
実際に訪れて見てみると、金正日の論文で強調されていた、こぢんまりして上品な地方産業は影が薄く第二経済委員会傘下にあり、大口径の曲射砲を生産する…

ico_new.gif偽ドル[北朝鮮のことば] リムジンガン
平壌市の黄金原(ファングムボル)駅とキョンフン通り周辺の外貨商店(外貨でのみ販売する店)も、すっかり夜の闇に包まれた。いつしか人影も途絶え、もう両替をしに来る客もいそうにない…

ico_new.gif北朝鮮―「私は政治犯収容所に10年いた」 リムジンガン
北倉(プクチャン)18号管理所出所者の証言 12
「第18号管理所」事件
 ●事件の発端「申訴事件」(承前)
申訴者を放っておいたら自分たちが危ないという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Xの一派は、検閲員がテープを手に入れて平壌へと戻るやいなや…

もっと見る

日本初!脱北者ブログ ぱく・よんの<北朝鮮とニッポンと>8

私はなぜ北朝鮮を脱出したのか 第7回

06408han.jpg

清津市のジャンマダンで食事をする人々 撮影 李ジュン


(前回から続く)

思わず、自分の<境遇>を忘れてしまった私は、その女の子と一緒に同僚の家へ向かった。彼女によると、母親が商売に出たまま家に戻らず、すでに半月が過ぎたのだという。
家財という家財をすべてを売った家は、鍵も掛かっておらずガランとしていた。
“父さんはどこに行ったの?”
“市場でコッチェビをしています。”


 まだ10才にしかならない幼い娘を、自力で生きよとばかりにほったらかして、自分だけ生きることに専念しているこの夫婦に、私は怒りを禁じえなかった。だが、実は、私にも生きていく術がないのである。
私は、自分の家族をすべて他人に押し付けた無能で、低能な者に過ぎないのであった。


 私自身、すでに三食続けて食べていない状況であった。だが、どうしようもないからと、この少女をそのまま置いて行けるだろうか。
私には家すらないのだが、靴や服は持っている大人として、(はだしの彼女に)履物の一つでも買ってあげないままでは、とうてい別れることはできそうになかった。
<良心>というものはそのように執拗なのだ。


そんなときに考えが及んだのが、古い機械式のセイコーの腕時計であった。
安い電子時計が出回り、日本製のセイコーも貴重品では無くなったが、時刻表示の機能だけでも価値はあるだろう。私には時刻表示はあまり意味がなくなっていたが、忙しい人々には必要かも知れない。
私はジャンマダン(闇市場)へ向かった。その少女も私の後をついてきた。


区域に一つしかないジャンマダンに通じる道は、入り口の手前数百メートルから、道の両脇に二列に露天が立ち並んでいて終わりが見えないほどだ。
商売にいそしむ人々は、少し前まで「商売人は小ブルジョアの反動だ」と絶叫し、思想闘争の場で批判の熱弁を吐いていた人々である。
この時も制度としては、商行為は明らかな違法行為であった。なんとか黙認されている程度である。だが、全体を180°急変させた力は、この共和国のどこに潜んでいたのだろう。客を引こうと声をかける<商売人気風>を、この人たちははどこに隠してきたのだろう。
時計を売って少女の靴を買おうとジャンマダンに来た私は、不覚にもこのような疑問を解くことに無意識に没頭していた。


ジャンマダンの中心に近づけば近づくほど、人波をかき分けて進むのがますます難しくなっていった。
老若男女の区別なく、胸や肩、頭、背中、膝、足の甲がめちゃくちゃに擦れ合い踏みつけ合い、ぶつかり合った。
他人の拳やひじ、カバンなどが四方から私にぶつけられた。


あまりに騒々しくて、「気をつけなさい」と注意する私の声は、後をついてくる少女の耳に入らなかった。
そこでの言葉使いは荒っぽく、丁寧な敬語では力がなくて誰も応対してくれない。私のポケットにあったガスライターがいつのまに消えた。気温が低い秋の夜明けには小枝でもかき集めて体を暖めるための貴重なライターであった。
“牛失って牛小屋直す”と言うが、この人の集りは決して旺盛な購買力を表していないということを、この時初めて発見した。
共和国各地のほとんど唯一の物流センターであるジャンマダンでは、集まってくる人の過半数は、概して個人的または組織的な窃盗や詐欺を目的としており、チャンスをねらって巡回しているのであった。

身震いするような無秩序の天国が、他ならぬこのジャンマダンにあった。


그만에야 자기 처지를 잊어 버린 나는 그 애와 함께 동료의 집으로 향하였다. 사연인즉 어머니가 벌이간다 떠나 집에 돌아 오지 않은지 벌써 보름이 넘는다고 한다. 가산이란 가산을 다 팔아 먹은 집은 쇠도 채우지 않은채 휑뎅그레 하였다.
“아버지는 어디에 갔니?”
“장마당에서 코체븨 쳐요.”


열살이 되나 마나 한 어린 딸을 저 혼자 먹고 살아 가라고 내 버린채 제 살 궁리만 하는 이 부부가 나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 나도 방도상 아무런 수가 없었다.
제 자식을 다 남에게 떠맡긴 무능아, 저능아에 불과한 나였다. 게다가 자기도 벌써 세끼를 련속 굶는 주제였다. 별수 없다고 이 소녀를 두고 그냥 가자니, 물론 나는 집도 없기는 하지만 신도 옷도 제대로 걸치고 있는 어른으로서 단 한가지 신발이라도 사주지 않고서는 도저히 헤여질수가 없었다. 량심이란 그토록 집요한 것이다.


요행 생각이 미친것이 손목에 차고 있는 오래 된 기계식 세이코였다. 전자시계가 쓸어 드는 바람에 일본제 세이코도 귀중품이 아닌지 오래지만 시간표식의 기능만은 가지고 있다. 변화가 없어진 나에게 시간표식은 의미가 없어졌으나 바쁜 사람들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장마당으로 향하였다. 그 소녀도 나의 뒤를 따라 왔다. 구역에 하나 밖에 없는 농민시장으로 통하는 길은 벌써 그 수백메터 전부터 두줄로 늘어선 바깥장이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었다. 이 사람들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장사군”라면 소부르죠아적 반동이라고 스스로들 절규하며 사상투쟁에서 비판의 열변을 토하던 사람들이다.
지금도 제도는 장사를 위법행위로 판단, 때때로 겨우 묵인이나 하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전체를 180도 돌변시킬수 있는 추동력이 이 공화국 그 어디에 잠재하고 있었으며, 사구려를 웨치는 상인적 품격을 이 사람들은 어떻게 억누르고 왔을가. 시계를 팔아 아이의 신을 사려 시장을 찾은 나는 미숙하게도 이런 의문을 푸는데 무의식적으로 골몰하였다.


중심에 접근할수록 그 인산인해를 헤치고 나가기가 점점 힘들어 졌다.
남녀로소 가림없이 가슴과 어깨, 잔등, 무읖, 발등이 마구 쓸리고 짓밟고 부딪쳤다. 남의 주먹이나 팔꿈치, 그리고 가방 따위가 툭툭 나를 후려치고 틈새로 드나 들었다.
소음준위가 어떻게나 높은지 주의를 주려는 내 목소리는 뒤따르는 소녀의 귀에 전달될수 없었다. 말씨라는 말씨는 모두가 다 쌍투이고, 례입은 전혀 박력이 없어 아무도 응대하지 않는다.


나의 주머니에 있던 가스라이타는 어느새 사라졌다. 기온이 찬 가을새벽 나무가지라도 긁어 모아 몸을 덮히는 귀중한 라이타였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지만 이 인산인해가 결코 구매력은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이때 처음 발견하였다. 공화국의 거의 유일한 물질중신인 시장에서 그 인파의 과반수가 대체로 개인적 및 조직적 절도나 사기를 위하여 기회를 노리는 순회인이라는 사실이였다. 몸서리치는 무질서의 천국이 다름아니 이 농민시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