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장에서 어린이가 땅바닥에 떨어진 국수 조각을 줍고있다. '고난의 행군기' 1998년 10월 강원도 원산시에서 촬영 안철(아시아프레스)

◆시작하며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사회의 대혼란기부터,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급속히 발달해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국가와 마찬가지로 식량은 물론 의복, 일용잡화, 식기, 가구 등의 소비물자와 물, 전기부터 주택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국가가 생산부터 유통까지 통제 및 관리하고 국민에게 공급하는 계획경제 체제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국가가 경제의 통제력을 상실함과 동시에 싹을 틔운 암시장 거래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최근 20년 사이에 규모를 몇 백배로 확대시키며 점점 복잡화, 고도화되었다. 현재 시장의 파워는 북한 경제를 좌우지 할 정도로 위세를 갖게 됐다.

이 논고에서는 북한에서의 시장경제 증식의 구체적 예를 유통・상업, 부동산, 운수・교통 등의 분야에서 개관(槪觀)하고 그 영향이 북한 사회의 통제 시스템과 사람들의 생활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해 보는 것이다.

알다시피 북한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강한 정보통제, 은폐를 국책으로하고 있다. 근래에는 주요 경제지표, 통계, 국가 예산액도 발표하지 않아 자료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의 기술(記述)만 보면 북한 경제는 순조롭게, 사회주의가 정책으로서도 실태로서도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이 '감춰진 북한경제'의 내막과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저널리스트인 필자가 적용해 온 방법은
(1)가급적 많은 북한인(합법, 비합법으로 중국에 온 사람)의 증언을 모으는 것.
(2)북한 내부에 사는 사람과 함께 취재 조사 팀을 만들어 영상, 음성, 문서 등 증거력이 강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본론은 이런 조사 방법에 의해 작성된 것임을 알려둔다.

북한 내부에서 촬영된 사진을 다용한 것은 비가시적 국가 경제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1.계획경제의 파탄과 암시장 경제의 발흥

1-1.계획경제의 파탄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정치는 스탈린주의 식의 조선노동당 일당 독재를, 경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계를 적용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민은 국가 계획에 따라 배치된 직장에서 일함으로써 의식주가 보장되고 교육과 의료는 무상. 교통, 오락 등의 공공 서비스도 국정 가격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실정은 빈약해도 계속 유지되어 왔다.

동서 냉전 하에서 '미제국주의'와 직접 대치하는 동방의 수비병으로서 사회주의 진영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온 영향이 크다.

그러나 벌써 70년대 중엽 이후 북한 경제는 부진에 빠지게 된다. 사회 자본 정비나 주민 생활 향상을 희생하면서 군사비를 증대하고 김일성의 동상이나 초상화를 비롯한 정치 선전용 기념비나 건축물을 전국에 만들었고, 1988년에는 한국에서 개최된 서울 올림픽에 대항해 1989년 평양에서 '세계청년학생축전'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거행하는 등 비생산적 부문에 거액의 자금을 투입, 낭비하는 것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또 국가 행정의 재정 체계와는 별도로 실질적으로 김정일과 김일성이 관리하는 독립된 재정 체계(당자금, 당경제로 불린다)가 비대해 국가 경제를 침식 및 압박하고 계획경제 시스템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냉전이 붕괴되고 자신을 비호, 지원해주던 진영 자체가 와해, 소멸돼 북한은 시대, 국제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자기 변혁(시장주의 경제 요소의 도입, 대외 개방)을 거부했다. 경제가 점점 파탄되는 과정에 있던 1994년 7월에 김일성이 급사하고, 북한에서는 대량 아사가 발생하는 민족적 참사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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