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오빠와 2명의 아들을 정치범이라며 잃은 박영숙 씨. 히로시마출신이다. (촬영 고다 하지메)

"멀리 뭉게뭉게 솟는 검고 이상한 모양의 구름이 보여서, '어? 저게 뭐지?'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히로시마 시에 원폭이 투하된 8월 6일 아침, 박영숙 씨는 소개(疎開) 하고 있던 히로시마 현 야마가타 군에서 남쪽 하늘의 원폭구름을 보았다. 그로부터 9일 후 일본은 패전. 박 씨가 히로시마 시내에 돌아오니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올케 언니는 폭사했다. 원폭이 떨어질 때, 히로시마 시에는 약 5만 명의 조선인이 있었다고 한다.

원폭의 버섯구름을 목격하고, 가족을 잃은 박 씨는 당시 5세. 사실은 북한에서 온 탈북자다. 원폭이 투하된 지 17년 후, 박 씨 가족은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간 것이다.

◆재일귀국사업

1959년부터 25년 간 계속된 귀국사업에서는 일본국적자 약 7천 명을 포함해 9만 3천여 명이 북한에 건너갔다. 그 중에서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피폭한 2천 명(추정)도 있었다. (현재 생존자는 50명 정도라고 한다)

니가타에서 귀국선을 탄 9만 3천 명은 당시 재일조선인 인구의 6.5명 중 1명에 이르러,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국가로의 첫 민족 대이동'이라고 일컬어졌다. 하지만 재일귀국자들이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한 것은 거의 모르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