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기 짝이 없는 ‘강령적 지침’

다시 정치학습 예기로 돌아간다.

김정일의 ‘말씀’은 통상 해당 기관(직장) 당 비서가 ‘이것은 ○○년 ○월 ○일 어디를 돌아보며 한 말씀’라고 설명과 함께 구두로 전달한다. 매번 전달의 마지막엔 ‘이 말씀은 현재는 물론 먼 앞날까지 준수해야 할 강령적 지침’이라는 판에 박은 말로 매듭짓는다. 그러나 실제로 ‘말씀’에는 어떠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구체성은 거의 없다. ‘강령적 지침’ 이라는 것은 참으로 가당찮은 말이다.

하나의 실례를 들어본다. 2008년 10월경으로 생각되는데 당시 벼 수확을 앞두고 식량사정에 관한 김정일의 ‘말씀’이 전달됐다. 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즘 주민들속에서 결혼식요, 아이 돌잔치요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 떡을 먹이고 밥해 먹이고 하면서 많은 식량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식량이 없다, 뭐 없다 하는데 우리 주민들이 아직 덜 고생했다.

먹을게 없다없다 하면서 왜 대용식량을 이용할 생각을 못하는가, 대용 식량을 잘 가공해 먹으면 식량사정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순간 회의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직원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웅성거렸다.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 눈짓하며 ‘어처구니 없다’는 뜻을 쓴 웃음과 몸짓으로 나타냈다.

정치학습이 끝나고 사무실에 돌아혼 후 한 늙은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이자 전달된 “말씀”은 잘못 전달되던가 그 사람(김정일)이 노망든 거 아냐? 지금 어느 시대인데…그래 우리가 식량 때문에 고생을 덜 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의 말대로였다. ‘고난의 행군’로 불리던 1990년대 중반기 식량난으로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자 당황한 당국이 벼뿌리와 소나무 껍질, 풀 등의 식물을 식량 대용으로 할데 대한 지시가 있었다. 그것이 ‘대용식량’이다. 당시 이런 식물을 어떻게 식품으로 이용하는가 하는 ‘방식상학’과 이러한 식물로 만들어진 요리 경연도 조직되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사람이 이 ‘대용식량’을 먹고 소화불량을 비롯한 병에 걸려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10년도 지난 지금도 김정일이 ‘대용 식량을 이용하라’, ‘아직 고생을 덜 했다’고 하니 ‘우리 인민들을 뭐 원주민으로 알고 있는가, 인민을 무시해도 너무하다’ 라며 직장 동료들 모두 어이 없어 했다.

이처럼 북한의 정치학습제도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정치학습시간에 그동안 밀린 서류 작업을 위해 정치학습과는 다른 글을 쓰기에 여념 없다. 감시하는 간부의 눈을 피해. (끝)

(기고: 림철"탈북자"/정리: 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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