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은덕군 여자축구 선수들의 씩씩한 모습. 촬영 1993년 7월 (아시아프레스)

 

지난 2월 말, 올 여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최종 예선 경기를 위해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오사카에 왔다. 이 시점에서 참가 6개 팀 중 FIFA(국제축구연맹) 세계 랭킹은 일본이 가장 높은 4위, 이어서 2015년 동아시아대회를 우승한 북한 팀이 5위였다. 두 팀 모두 올림픽 진출이 기대되고 있었다.

탈북자 친구가 예선 마지막 날, 북한과 일본의 경기를 관전하고 왔다. 시합은 1-0으로 일본의 신승(辛勝). '북한 팀이 체격도 좋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라며 그는 몹시 아쉬워했다. 관중석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북한 팀 11명의 선수가 킥오프 전에 모여있는 사진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20여 년 전에 북한 국내에서 촬영된 사진을 떠올렸다. 그것이 이번에 소개하려는 지방의 여자 축구팀의 모습이다.

◆지방도시 여자 축구팀의 위풍당당한 모습

1997년 여름, 북한에서 수많은 기민(飢民)들이 중국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취재에 응해준 한 북한 남성으로부터 현상되지 않은 네거티브 필름을 받았다.

"조선 사회가 혼란해지기 전, 아직 민중의 삶이 평온했던 무렵을 조금 알 수 있을 겁니다"

대체 무엇이 찍혀 있을까. 일본에 돌아와 현상해보니 20장 정도의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그 중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20살 정도의 여자 축구팀 선수들이 모여있는 사진이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지, 선수들은 목에 메달을 걸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

선수들 유니폼의 가슴부분에는 '은덕'이라고 적혀 있다. 중국 국경 가까이에 있는 함경북도 탄광 마을이다. 일찍이 '아오지'라고 불리며, 북한 사람들에게는 '머나먼 빈곤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곳이다.

필름에 찍힌 날짜는 1993년 7월. 지방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기다. 건물 외벽의 페인트는 벗겨지고, 창문에는 유리가 없이 판자로 고정했다. 미증유의 대기근 조금 전의 시기라고 해도, 당시의 경제는 이미 수렁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여자 축구 경기가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그만큼 축구는 특별한 경기였을까.

북한 스포츠 사정에 밝은 탈북자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큰 기업에 소속된 체육단(팀)일 것이라고 한다. 축구는 북한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라서 인민군과 기업이 산하에 팀을 가지고 선수를 우대하고 있고, 시합에는 많은 관객들이 몰려 응원에 열을 올리고 판정을 둘러싸고 때때로 싸움이 날 때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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