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탈북해 온 귀국자가 일본 간사이의 '재일' 친척에게 보낸 편지. 1999년(아시아프레스)

중국에 탈북해 온 귀국자가 일본 간사이의 '재일' 친척에게 보낸 편지. 1999년(아시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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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치'라는 모멸어를 쓴 귀국 2

1998년 여름, 후쿠오카 출신의 귀국자 어머니를 둔 여성을 만난 시기부터, 취재에 응하는 탈북자 중에는 귀국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이니치'인 지인으로부터 중국으로 탈북한 친척으로부터 편지와 전화가 걸려와 “중국에 가게 되면 한 번 만나봐 달라”는 부탁을 받는 일도 있었다.

간사이에 있는 '자이니치'인 복싱 관계자는 사촌 여동생이라는 사람이 보내온 편지를 보여주었다. 조선에서 도망쳐 나왔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으로, 중국 연변 소인이 찍혀있는 편지였다. 편지에는 그가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이 동봉되어있었다.

“80년대에 조국 방문으로 북한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 때는 사촌 여동생이 난민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귀국자들은 참 불쌍합니다. 원주민들은 친척도 많아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지만, 우리 귀국자들은 원주민들보다도 더 가혹한 상황입니다. 어째서 우리 부모님은 풍요로운 일본에서 이토록 가난한 조선에 돌아온 것인가요? 저는 가난한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워 하늘에 저주라도 퍼붓고 싶어요”

편지를 보낸 이수경씨는 이 당시 19세. 일본어도 할 수 없고 일본에 대해서도 모르는 북한에서 태어난 '귀국 2세'다. 후에 중국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여동생이 북한 현지 사람들을 'ゲンチャン(겐쨘)', 'ゲンゴロー(겐고로)', '아파치'라고 부르며, 스스로를 '우리 귀국자 자녀'라고 칭했던 것은 충격적이었다. '아파치'란 무엇인가? 귀국선이 활발하게 오가던 60년대 북한에서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긴 머리를 땋아 늘어뜨리고 있었다고 하는데, 귀국자들은 그 모습을 미국이 서부극영화에서 '야만인'으로 묘사했던 네이티브 아메리칸에 빗대어 만들어낸 은어였다. 귀국자들이 현지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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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이미 귀국사업 개시 후 40년이 지나있었는데도 귀국자들 사이에서 같은 민족을 경멸하는 은어가 일상적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부모들의 영향 탓인지 '귀국 2세'들 세대에서도 귀국자와 현재 주민 사이의 갈등이 없어지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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