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중심부 모란시장의 식품 매장. 일하는 여성들은 점원이 아니라 폭 80센티의 매장 경영자다. 2011년 7월 촬영 구광호(아시아프레스)

평양 중심부 모란시장의 식품 매장. 일하는 여성들은 점원이 아니라 폭 80센티의 매장 경영자다. 2011년 7월 촬영 구광호(아시아프레스)

 

북한 시장경제의 확대는 어떤 사회 변화를 가져왔는가(1) >>

6 시장 확대에 따른 '계급진지'의 동요

 한국에 망명한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은 1996년 12월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 것으로 알려진 연설문을 공개했다. 연설에서 김정일은 농민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농민시장과 상인들만 번성하면 사람들 속에 이기주의가 조장되어 당의 계급진지가 깨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당은 대중적 기반을 잃고 쓰러질 수있다. 이는 이전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사태에서 잘 나타난다"(한국 잡지 '월간 조선' 1997년 4월 호)

의식주와 교육, 의료를 국가가 보장한다는 '사회주의 우월성'의 관점에서도, 또 칼로리원을 국가가 장악함으로써 민중을 통제, 지배하는 '양정(糧政)'의 관점에서도 김정일은 농민시장의 증식-암시장화를 자본주의 싹으로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김정일의 이 연설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렀다. 노동당과 김정일이 지도한 것도, 법 제도를 크게 바꾼 것도 아니지만, 암시장으로부터 확대된 시장경제는 당국에 의한 추인(追認)과 억제를 거듭 이겨내면서 북한 사회에 완전히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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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매년 4월에 열리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전년도의 국가 예산 집행의 결산과 새해의 국가 예산 계획에 대해 보고, 토의, 승인한다. 그러나 2002년 이후 국가 예산 및 공업 생산액, 곡물 생산액은 전년의 증감률이 공표될 뿐 금액이 미발표라는 이상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명분이 되어 버린 계획경제가 더 이상 자국 통화에 의한 지표도 보일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음을 나타내고 있다.※4

김정은 정권은 시장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

시장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입장은 어떤가? 2011년 말 김정일이 급사하면서 출범한 김정은 정권은 2013년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 관리 방법을 도입하면서 공업에서는 기업의 독립 채산제나 '기업이 국가의 생산 계획과 별도로 독자적인 신제품을 개발, 생산,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생산 조직과 무역 및 합영, 합작권을 기업에 부여' 등 기업의 재량을 확대했다. 농업도 같은 해에 '포전 담당제'를 도입하고 협동농장 농민이 담당하는 논밭의 생산물 처분권을 확대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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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시장은 어디까지나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을 보완하는 한정적인 역할이라는 입장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경제관리의 분권화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존'을 촉진시키고 최종적으로는 '생산수단의 민영화'를 초래한다는 지적에 대해 내각의 경제 행정 담당자는 '조선은 사회주의 경제제도의 기초인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고수하고 있다'라고 반론했다"※6

이처럼 일부러 "북한에서 시작된 조치는 단연코 '개혁개방'은 아니다"라고 강조하기 위해 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기사에 거듭 발표하고 있어 흥미롭다.

이상과 같이 시장경제의 발달과 확산에 의해 북한 사회는 크게 달라지게 되었고, 전에 없었던 유동성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도 물건도 돈도 정보도 활발하게 유통되고 국유 부동산이 거래되거나 노동시장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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