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원칙》이 처음 등장했을 때

"당시는 김정일 후계 구축을 위한 사업이 광범위하게 펼쳐졌다. 사회 분위기는 정말 미묘했다. 정치 강연과 정치 학습 등 대중이 모이는 자리에서 김일성에 덧붙여 김정일의 말씀이 자주 거론됐다. '주체혁명위업의 계승' 등, 권력자의 후속 사업을 암시하는 문장이 곳곳에서 발표됐다.

그러던 중 《10대원칙》이 발표되자, 많은 사람이 '대체 무슨 소리냐, 정말 터무니없는 세상이 왔다. 독재를 합리화하려 한다'라며 정권에 대한 당혹감과 실망을 금치 못했다.

당시 이미 정권 비판과 사회에 대한 불만 한마디 때문에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로 끌려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누구도 대놓고 《10대원칙》을 비판하지 못했다. 하지만 친한 사이끼리는 《10대원칙》의 '독재성'을 비판했다."

또한 《10대원칙》 발표 직후, 현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재일조선인 귀국자의 반응이 크게 엇갈렸다고 한다.

"북한 사회의 정치적 분위기(권력자에게 절대 충성하는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재일귀국자들은 《10대원칙》의 독재성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해 말했다. 반면 김일성 정권 아래의 사회 분위기에 적응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세뇌당한 북한 주민들은 《10대원칙》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이 적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표현에 익숙했던 많은 재일귀국자가 《10대원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무심코 입에 올렸다는 이유로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로 끌려갔다. 한편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10대원칙》을 철저히 구현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동시에 전인민적인 규모로 강제적인 학습 캠페인이 진행됐다."

2013년 개정 후에도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10대원칙》에 따라 지도자와 당에 충성을 다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자기비판하고, 충성의 맹세를 새롭게 하는 반성문 제출을 전국민에게 강요했다. 동시에 기관・조직별로 《10대원칙》의 10조 60항 암기 대회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