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농정 개편은 아직 현장에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상태다. 정책 도입 과정의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인식에 긍정적 변화도 보고된다. 그래서일까? 농민들 사이에서 새 정책이 안착된 이후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이 교차되고 있다. (전성준 / 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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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정책 속에 농민에 대한 인식 변화
2025년 2월 함경북도의 농장원 A 씨는, 농장은 국가계획량을 수행한 이후 추가 식량을 공장이나 기업소와 거래할 수 있게 되었고, 농장은 보유 식량을 가격이 더 오를 때를 기다려 팔지 않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농장이 확보한 여유 식량을 식량 가격이 올라갈 때 판다고 판매하지 않고 있어요. 나진이랑 온성에 있는 기업소들도 농장에 찾아와서 식량을 구입하려고 하지만 농장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 식량 값이 금값이라서 다들 (여유 식량을) 내놓지 않고 있어요”
그동안 도시의 량곡판매소에서 만성적인 판매량 부족이 관찰됐고, 작년 말부터 지속적인 식량 가격의 상승이 보고돼 왔다. 식량 판매권을 가진 농민이 보유 식량을 팔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농장원인 A 씨는 최근 주민 사이에서 농민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고 했다.
“농작물을 수매 방식으로 농장원이 판매도 할 수 있고, 식량 가격도 많이 오르고 그러니까, 이전에는 (농민을) 농포라고 놀렸지만, 지금은 농장원들이 인기가 많아요”
‘농포’는 북한에서 최하층의 대우를 받는, 농민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최근 새 농업 정책이 도입되면서 농민을 바라보는 주민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 농장 땅은 ‘우리 땅’ 변하는 농민의 의식
농촌 현장에서 농민들은 새 정책이 안착된 이후를 기대하며 올해 농사에 대한 의욕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다.
A 씨는 지난 4월, 농장의 간부들이 새 정책을 선전하고 농장원의 생산 의욕을 고취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우리 땅’이라는 말도 많이 하고, ‘우리 하는 것만큼 가져간다’는 말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리고 자체로 농사를 지어야 가을에 남는다고 농촌동원 노력도 안 받으려는 움직임도 있어요”
새 정책이 도입되면서 과거에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던 지원 노력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현 상황에 대한 당연한 대처인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주변 농장원의 반응도 보고했다.
“농장원들 중에 노력자가 3명 이상인 세대는 지금의 방식이 좋다고 해요. 이들이 같은 분조일 경우, 본인 배급 외 추가 생산된 식량을 더 가져갈 수 있어 이득이고 한두 명인 경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 같은 언급에 대해 A 씨는 구체적인 배경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함께 일할 경우 농사 과정에서 유리하고 또 분배에서도 일종의 가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일각에선 반신반의, ‘빚 없는 분조장 없어’
한편 새 정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고 A 씨는 설명했다.
“작년에도 같은 말했다가 농사 잘 안되고 질이 나쁜 땅을 가진 분조는 본인 분배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말은 좋지만, 여기 분조장, 작업반장치고 빚이 없는 사람들이 없어요. 우리 분조장도 중국돈으로 4만 원 빚이 있어요”
중국 돈 4만 원은 한화로 약 790만 원에 해당한다.
※ 분조장 : 북한 농장에서 통상 10명 내외의 농장원으로 구성되는 생산의 말단 단위인 분조의 책임자.
국가가 영농자재를 보장해주지도 않으면서 계획을 충분히 줄이지 않으니 결국 생산물을 통해 해결해야 할 자재 구입 비용이 빚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분조에서 여윳돈 만든다고 밭머리나 빈 땅에 작물 심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그 돈(중국 돈 4만 원)을 어떻게 갚아요. 분조장들이 이제는 기름값 외상하기 전에 가을 분배에서 뺀다고 통보하고 (분조원들) 수표(사인)까지 받아요”
이는 영농물자 비용을 분조장 개인의 빚으로 처리하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분조의 공동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는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A 씨는 영농자재를 자체로 해결하고 농기계를 사용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비용을 생산물에서 해결하려면 결국 가을에 농장원 개인이 가져가는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10회에 걸쳐, 최근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농업 정책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여서 내년(2026년)이 되어야 정돈될 것 같다”는 A 씨의 말처럼, 새 정책의 실효성과 영향력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시리즈 끝)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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