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정권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발생한 2020년 이후 폐쇄적 경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농업 정책을 크게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를 개정된 농업 관련법을 소개하면서 현지 농장의 실태와 함께 10회의 연재를 통해 보도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김정은의 농정 개편'의 핵심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전성준 / 강지원)
◆ 김정은 정권 이래 가장 전면적인 개편
2024년 8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북한법령집」에 의하면 「농장법」, 「농업법」, 「량정법」 등 여러 농업 관련법률이 이 기간 수차례의 개정을 거친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 2월부터 2021년 11월 사이 「농업법」은 한 차례, 「량정법」은 두 차례, 그리고 「농장법」은 무려 네 차례나 개정됐다.
또한 함경북도와 양강도에 거주하는 3명의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들이 지난 2년간 보내온 현지 농장에 대한 조사 보고는 법률 분석을 통해 파악한 농정 개편의 대략적인 윤곽에 구체적인 세부를 채워 넣을 수 있게 해주었다.
◆ 농정 개편의 핵심
김정은 정권의 농정 개편의 핵심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농장의 기업화
농장이 과거 국가가 제공하는 토지와 영농물자를 공급받아 양곡을 생산하는 단순한 생산 단위에서 자체 경영 실적에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적인 경영체로 변화되었다.
특히 「농장법」, 「량정법」 등 농업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농장을 ‘사회주의농업기업체’로 정의하고 자율적 생산, 유통, 가격 결정 권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부여했다.
실제로 현지 취재협력자는 현시기 “농장이 지주가 되어가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즉, 농민 스스로 기업화된 농장의 재량권 확대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2. 계약을 통한 계획의 분화 및 유통 구조 개편
과거 국가에 의해 전량 징수되던 생산계획(목표 생산량)은 국가 몫의 국가계획과 각 기업소들과 계약의 방식으로 맺어지는 계약계획으로 분화되었다.
이에 의해 농장과 기업소 간의 식량 공급은 국가의 계획에 반영되어 통제 하에 있긴 하지만, 실제적인 유통 과정에서는 농장과 기업 간의 자율성이 인정된다.
이 같은 기조 아래, 현지 협력자들은 개인과 농장의 여유 식량을 거래할 수 있는 장으로 신설된 ‘영농물자교류소’가 과거 장마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3. 농민 인센티브 제도 개선
분조를 생산의 기본 단위로 하면서 계획 이외의 추가 생산분을 분조에 속한 농장원들이 나눠 가질 수 있는 제도로 이행 중이다.
여유 식량의 처분에 농장원의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농민에 대한 사회 인식이 과거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농장원의 언급도 있었다. 이는 새로운 농업 정책이 초래한 중요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책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존재해, 새로운 인센티브 제도의 정착 여부는 올가을 가서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현지의 협력자들은 전망한다.
4. 표면적 자율화, 실질적 통제
표면적으로 농장과 농민의 부분적 자율성을 허용하고, 계약에 의해 유통을 활성화하는 한편 거기서 비롯되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장려하고 있지만, 정책이 점차 안착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국가 통제는 더 강화되고 있다.
‘량곡판매소’, ‘영농물자거래소’ 등 국영 유통 기관을 통한 국가공급망을 확충, 강화해 식량의 국가전매를 실현하고 그 밖에서의 거래는 철저히 불법화했다.
또한 농장원의 주요한 실질 소득원이던 소토지(불법 개인경작지)농사를 전면 금지해 농민들이 더욱 국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즉, 개인적 자립 공간에 대한 철저한 차단을 통해 오직 국가에 의지해서야만 생존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 통제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의 이중적 기획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진행된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약 10개월 후, 김정은 정권은 ‘조성된 난국’에 대한 ‘정면돌파전’을 선포하고 경제분야에서 강력한 국가통제에 기반한 반시장정책으로 선회했다.
작금의 농정 개편은 그 일환이다. 김정은은 2019년 12월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농업생산을 결정적 향상을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으로 설정한 바 있다.

이후 대대적인 법률 개정을 앞세우고 2022년경부터 농촌 현장에서 본격화된 현 개편은 농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면서도 제한적 시장 기능을 도입해 농업 현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개선하려는 이중적 기획의 성격을 띠고 있다.
◆ 김정은의 ‘반시장 정책의 시장 의존성’
역설적인 것은 이번 농정 개편이 김정은 정권이 추진해 온 '반시장 정책의 시장 의존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현 농정 개편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제한적 시장 원리를 도입해 생산성 향상을 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 개편의 본질은 시장이 추동하는 계획 경제의 가능성에 대한 실험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욱이 김정은 정권은 시장을 단순 수용하던 과거 방식을 넘어, 국가가 시장 메커니즘을 일부 활용하고 관리하며, 나아가 유통의 독점까지 꾀하고 있다.
◆ 북한식 농정 개편의 전망과 과제
현재 진행 중인 새로운 농업 정책의 성공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지나친 통제는 생산성 향상의 걸림돌이 될 것이고, 과도한 시장화는 정권의 불안정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김정은 정권이 국가 통제와 시장 원리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지에 이번 농정개혁의 성패가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국가가 약속한 (분배)정책을 반복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것은 농민의 생산 의욕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비료, 농기계, 연료 등 농업 자재의 만성적인 부족은 생산성 향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새로운 농업 정책이 북한 농촌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현지의 농민들은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새로운 정책의 안착을 주시하고 있다.
새로운 농업 정책이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향후 지속적인 관찰과 분석이 필요한 과제다.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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