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탄 보트를 향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남녀. 자전거에 함께 타고 있다. 남성의 가슴에는 초상 배지가 보인다. 평안북도 삭주군

◆ 웃음소리, 냄새... 처음 실감한 '사람 사는 나라'

북한 사람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 2024년 10월 중순 아시아프레스 기자 두 명이 북중국경지대로 향했다. 압록강 최하류인 단동(丹東)에서 거슬러 올라가, 두만강 최하류인 방천(防川)에 이르는 1400km 중에, 국경 접근이 가능한 약 1000km를 10일에 걸쳐 여행했다. 취재자 전성준은 탈북자이며, 홍마리는 조부의 고향이 북한에 있는 재일 4세다. 조선반도에 뿌리를 둔 두 사람이, 국경에서 보고 느낀 것을 통해 이웃 나라인 북한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재민용 아파트 건설 현장. 거의 인력이기 때문에 밀집해 작업하고 있다. 모두 지친 표정이다. 평안북도 신의주시 위화도

◆ 두 가지의 조선 뿌리

2022년, 회사를 그만뒀다. 뿌리를 마주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렇다 할 것은 없다. 그저, 단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조부모가 어떤 곳에서 태어나 자랐는지, 왜 고향을 떠났는지. 재일(在日)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의 역사를 알지 못했다. 그 반동으로 생긴 호기심이, 할머니가 태어난 한국으로의 어학연수로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또 다른 뿌리의 땅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함경남도다. 생전에 할아버지로부터 고향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미나마타병으로도 알려진 질소화학공장에서 일한 것. 1945년 8월에 진주해 온 소련군을 피해 남하한 서울에서 할머니를 만난 것.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그 땅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국경지대는 늘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

홍수 복구 작업에 동원된 병사들. 제방 일부가 무너져 있다. 평안북도 삭주군

◆ 첫 대화에서 '적국'이라 불리다

처음으로 북한 사람과 말을 나눈 것은 요녕성 심양시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였다. 입구에서 여성 종업원이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무심코 "한국어라면 이해할 수 있는데요"라고 말하자, "한국어가 아니라 조선어입니다!"라며 노려보았다. 뒷걸음질을 칠 정도로 무서운 태도였다.

"일본에서 왔습니다"
"돌아가세요"
"왜 그러시죠?"
"일본은 영원한 적국이니까"

결국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맨 구석 자리에 차도 내주지 않는 푸대접이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면서 태도는 누그러졌고, 웃는 얼굴로 냉면을 비벼주기까지 했다.

"왜 한국인은 입장할 수 없는 건가요?"라고 물어보았다. "괴뢰(한국) 놈들은 적국이니까요" 단숨에 토해내는 말투가 몹시 기계적인 인상을 주었다. 2023년 말, 김정은은 "대한민국은 적"이라고 선언했다. 그 방침은 중국에 파견된 노동자에게도 철저히 적용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