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험한 건설 현장에 동원된 젊은이들
다음 날은 압록강 최하류인 단동으로 향했다. 이곳은 북중 무역의 최대 거점이기도 하다. 기념품 가게에는 '조선산' 술과 담배가 즐비했고, 북한에서 사업차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국경이 완전히 봉쇄됐지만 이제는 사람과 물건의 왕래가 재개됐다.
북중 무역의 대동맥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압록강대교다. 그 가운데에서 유람선을 탔다. 7월 말 폭우로 인한 이재민 아파트 건설이 진행 중인 위화도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뚜렷해졌다.
무심코 '앗' 하고 소리가 새어 나왔다. 축축한 콘크리트의 색깔, 제각각인 방향으로 뻗은 철근, 긁어모은 듯 들쭉날쭉한 목재로 짜인 형틀과 발판. 폐허인가? 라는 것이,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옥상이나 외벽을 따라 생명줄도 없이 밀집해 작업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군대와 청년조직에서 동원됐다고 한다. 표정에서는 피로 이외의 감정은 읽을 수 없다. '동원'이라는 국가시스템에 얽매인 사람들로서는 '위험'이라는 느낌마저 들 여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 북한에서 들려온 웃음소리
수풍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일제 식민지 시대 말기에 건설돼, 당시 동양 최대로 불렸던 수력발전소다. 맞은편인 평안북도 삭주군에 최대한 가까이 가기 위해 소형 배를 전세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아가는 보트 위에서 필사적으로 카메라를 돌리며, 마치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쪽에는 키보다 훨씬 높은 철조망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었다. 약 5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강가에서 빨래하거나 물놀이하곤 했다. 하지만 2020년 팬데믹이 발생하자 김정은 정권은 주민이 이 국경 하천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했고, 지금은 물을 만질 수조차 없게 됐다.
철조망 안쪽으로 자전거를 타는 여성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렌즈를 줌 하는 순간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사람 사는 나라'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 목재를 태우는 냄새도
오른쪽으로 압록강을 바라보며 오롯이 산길을 따라 길림성(吉林省) 장백(長白) 조선족 자치현에 도착했다. 강 건너는 양강도 도청 소재지인 혜산시다. 북중 국경에서 외국인이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강폭이 좁아, 그 거리는 불과 수십 미터다. 장백현에 오기 직전에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북쪽에서 한국과 연결되는 도로를 폭파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정세 긴장 때문인지 외국인인 우리 뒤로 중국 공안이 한참 따라다녔다.
감시의 눈을 피하며 혜산의 거리를 카메라로 들여다보니, 골목에서 생선과 과일을 사고파는 여성들의 손에 쥐어진 지폐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주택가 안 공터에서는 손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이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몸을 뒤틀며 웃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강가를 산책하자, 나무를 때는 냄새가 풍겨왔다. 밤에는 제법 쌀쌀해진다. 난방용일까. 중국 쪽 산책로와 건물은 화려하게 조명이 밝혀져 있지만, 강 건너편에는 불빛 하나 없다. 혜산에는 아시아프레스의 취재 파트너들이 살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은 하루에 전기가 3시간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 더 가까이 가고 싶다,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북한 주민의 삶은 극도로 힘겹다. 당국에 의해 개인의 상행위가 규제되면서, 현금 수입을 잃고 굶주리는 사람도 있다. 한겨울에는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추위 속에서,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삶은 얼마나 고될까. 더 가까이 가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국경에서 뿌리의 땅을 엿보며, 그런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홍마리)
※ 전성준의 회차로 이어집니다.
※ 사진은 모두 2024년 10월에 홍마리와 전성준이 중국 측에서 촬영했습니다.
※「주간금요일2025」4월 4일자에 게재된 기사를 가필 수정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