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시장 쪽 노천에서 생선과 과일이 팔리고 있다. 압록강 상류 혜산시 중심부

북한 동포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아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기자 전성준은 탈북한 지 10년 만에 북중 국경으로 향했다. 압록강 상류에서 고향이 보이는 땅에 서서 푸른 물을 머금은 강을 바라보며 전성준의 가슴에 오고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탈북자와 재일 4세의 북중국경 1000km 답사 (1) 내 뿌리의 땅,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압록강 상류의 강폭은 불과 수십 미터. 강변에는 울타리와 이중의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혜산시 위연동

◆ 다시 국경에 서다

이곳은 압록강 상류의 중국 길림성 장백현. 건너편은 북한의 혜산이다. 2014년 10월,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가슴 끓이던 25살의 나는, 북한 쪽 산등성이에 서서 불빛 찬란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토끼처럼 충혈된 눈으로 끊임없이 주변을 불안하게 살피는 6명의 사람과 어둠을 타 강을 건넜다.

늦가을 백두산 기슭의 압록강은 뼈가 시리도록 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추위에 굳어지는 젖은 옷가지를 비틀어 짜며 누군가 귓속말로 춥냐고 물었다. 내가 떨고 있다고.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정말로 내가 떨고 있었다면 그것은 추위보다는 등 뒤 초소에서 경비를 서는 국경수비병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북한 쪽 하늘을 향해 어머님께 했던 말을 다시 되뇌었다.

“꼭 살아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지금, 10년 전 들뜬 희망으로 바라보던 중국 땅 장백에 서서 무거운 마음으로 고국을 바라본다. 살아는 있지만, 돌아갈 수는 없는 그곳을.

이웃조 조직의 인민반 경비초소 앞에서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성들. '인민반 사업을 강화하자!'는 구호가 보인다. 혜산시 위연동

◆ 갇혀버린 사람들

언젠가 가야지 하면서도 10년이나 미뤄왔던 북중국경 탐방이어서 출발 전부터 한껏 들떠 있는 와중에도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중국은 탈북민을 북송시키는 국가이고, 특히 북중 국경 지역은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암약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취재 내내 우리는 중국 공안의 미행과 감시카메라를 피하느라 고전했다.

북한의 신의주가 바라보이는 압록강의 하류 단동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정작 덤덤한 내 마음에 조금 놀랐다. 북한을 구경하려 중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관광객도, 올여름 수재 후 북한이 돌관공사로 두 달 만에 쌓아 올린 수재민용 아파트도 내 마음에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보면서 덤덤했다. 나는 잠깐 내 마음이 고장 난 것인가 의심해 보았다. 유일하게 내 마음에 감흥을 일으킨 건 압록강이었다. 오리 대가리의 푸른빛을 닮았다는(압록) 이름이 무색하게 강은 누런 흙탕물이었다.

압록강을 따라 의주와 만포, 자성 등 북한의 도시들을 바라보며 거슬러 올랐다. 지난 여름의 폭우 피해의 흔적이 남은 와중에도 가장 빨리 복구되는 것은 유실된 국경 차단 철조망이다. 이제 북한 사람들은 철조망과 카메라로 봉쇄된 국경 안쪽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10년 전만 해도 한 해에 천 명 이상의 탈북민이 남한으로 입국했지만, 최근 그 수는 수십 명에서 백수십 명 규모이다. 그나마 대부분은 오래전에 탈북해 제3국에 머물던 사람들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북한을 탈출한 사람은 극소수다. 이제 탈북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두만강 중유역. 왼쪽이 북한. 북중의 양안에서 철조망이 쳐져 있다. 함경북도 은성군

◆ 10년 만에 보는 고향의 사람과 거리

거슬러 오를수록 강은 더 푸르러지고, 마침 절정기를 맞아 붉게 타는 단풍이 피같이 진해졌다. 혜산이 가까워지자 내가 얼마나 이곳에 돌아오고 싶어 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혜산은 탈북을 준비하며 4년을 살았던 도시다. 그쪽에서 넘어온 장작타는 냄새와 삶의 소음이 잠자던 추억들을 흔들어 깨웠다. 내가 기억하는 압록강의 물줄기는 그 동안의 큰물에 바뀌어 버렸고, 오래전 친구들과 강가에서 멱을 감고 몸을 말리던 너럭바위도 찾을 길 없었다. 사랑했던 사람과 즐겨 찾던 낡은 영화관은 그대로인데 그녀가 살던 집은 그사이 생겨난 고층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강 너머로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행여 아는 얼굴이라도 발견할까 싶어 초망원카메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개인장사를 강하게 단속해 장마당이 위축됐다고 하지만, 익숙한 거리의 골목장은 10년 전보다 더 붐비는 듯하다.

농촌의 모습. "당중앙따라 천만리" "위대한 김정은 동지 혁명사상 만세! "라는 구호가 보인다. 함경북도 회령시 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