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한 옥수수 밭 가운데서 얘기 나누는 사람들. 뒤의 남자는 국경경비에 동원된 모양으로 로농적위대(예비군) 복장을 하고 있다. 2023년 9월 하순 평안북도 삭주군을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함경북도의 한 농장에서는 농촌동원에 군부대가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전체 주민들을 동원해 농촌을 지원하는 전통적인 '총동원' 방식에서 농장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농장이 인건비와 식비를 부담하고 수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농장의 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농장에서 동원노력을 최소화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공짜'로 쓸 수 있는 병사들은 환영받고 있다고 한다. 농장원인 취재 협조자 A씨가 6월 중순 전해왔다. (홍마리/강지원)

◆군대가 농촌에 상주하며 농사 도와

함경북도에 거주하는 협조자 A 씨는 이 농장에서는 5월부터 다수의 군인들이 교대로 농촌에 상주하며 농사를 돕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농촌 지원은 군인이 주력역할을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고 부대에서 병사들이 많이 왔다. 우리 농장에서도 대체로 50명의 병사가 상주했고, 많을 때는 1개 중대(약 120명)가 나올 때도 있었다."

북한에서는 매 봄 모내기나 김매기 시기가 되면 전 국민을 총동원해 농촌 지원에 나서게 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농장이 주도적으로 필요한 동원 인원을 산정해 당국에 요구하고 대신 동원 인원의 식사나 일당을 농장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군인이 밭에서 옥수수를 인수 받고 있는 듯한 모습. 저울로 수확량을 기록하는 것처럼 보인다. 2023년 9월 하순 평안북도 삭주군을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러시아산 밀가루 있는데…음식 구걸하러 오는 병사들

몇 년 전부터 김정은 정권은 농장을 '기업체'로 규정하고 영농방법과 생산물 유통에 있어 농장의 재량 확대를 허용했지만, 결과 농장이 짊어져야 할 부담도 커졌다. 이는 이전 기사에서 전한 바가 있다. 이 때문에 농장에서는 동원자 수용에 따른 부담 회피를 위해 봄부터 초여름에 걸친 농번기 일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에너지와 농기계가 부족한 북한에서 농사는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에서 병사들이 부대 단위로 농장에 파견되는 것은 궁여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A 씨가 소속된 농장에서는 동원돼 온 병사들이 군에서 식량을 지급받고 있어 농장에 부담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병사들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고 A 씨는 말했다.

"병사들을 농장 분조마다 배치해 매일 김매기를 시킨다. (부대에서) 가져온 식량을 보면 러시아산 밀가루를 먹는데 (양이 충분하지 않아) 항상 굶주려 있다. 허약한 병사들이 물을 찾는 척 집마다 들려 음식을 달라고 조른다. 군대에 나간 자식이 생각나서 사람들이 누룽지 등을 몰래 내주고 있다"

※북한의 농장은 수~수십 개의 작업반으로 구성되고 그 아래에 생산의 말단 단위인 분조가 조직된다. 분조에는 통상 10명 안팎의 농장원이 소속된다.

마을에서는 굶주린 병사가 상주하면 도둑질이나 강도 등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해, 안전국(경찰) 산하의 규율단속조직 '규찰대'가 순회하고 있다고 한다.

"군민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계급을) 강등시키고 부대로 복귀시킨다고 해 아직까지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옷이나 자전거 등의 도난, 강도 사건이 많아서, '규찰대'가 순찰을 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 하에서는 농장을 기업체로 규정하고 영농에서 생산물 유통에 이르기까지 자율권을 주는 농정 개편이 진행 중이다. 경영에 책임져야 하는 농장 입장에서 공짜 인력으로 군 병사들을 활용하고 있는 셈인데 그런 농정개편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아시아 프레스에서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북한 지도 제작 아시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