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골목길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 앉아 있고 아이들이 뛰어 논다. 2024년 10월 양강도 혜산시를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유통의 국가 독점과 함께 최근 북한 경제의 가장 큰 변화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정착이다. 기업책임관리제는 계획수립부터 생산, 가격 결정, 판매, 수익 처분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경영권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최근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늘어난 기업 자율성의 틈새를 돈주들이 파고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성준 / 강지원)

◆ ‘기업책임관리제’는 무엇인가?

기업책임관리제는 2014년 5월, 김정은이 당, 정, 군 책임일꾼들과 나눈 담화《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할 데 대하여》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이후 2016년 5월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에서 공식화되었고, 2019년 8월에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에까지 등장하며 언론과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개정된 북한 헌법 33조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 국가는 경제관리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하며 원가, 가격, 수익성 같은 경제적공간을 옳게 리용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이 제도의 도입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한마디로 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축소되고, 기업의 자율성은 확대되었다. 즉, 예전에는 국가가 원료, 생산량, 판매처 등 모든 것을 세세히 결정하고 기업은 국가의 계획과 공급에 따라 생산만 수행했다면, 현재는 국가의 지원을 축소하는 대신 (과거에 비해 적은)국가계획을 수행하고, 그 외 시간과 자원으로 자율적인 경영활동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다.

◆ “이제 장마당 보다 기업소”

아시아프레스의 현지 협력자들이 최근 보내온 소식들은 기업책임관리제가 현지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6월, 양강도 혜산시에 거주하는 협력자 C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은 기업소랑 같이 하는 걸 해야지 장마당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공장에서 노동자 작업복을 주문하려 해도 개인에겐 할 수 없고 지방공장이나 국영기업에 주문해서 대금을 50% 이상 지불하면 생산돼서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같은 시기, B 씨도 기업들의 달라진 경영방식에 대해 언급했다.

“기업소들이 물건을 팔 수 있게 기업소 매점을 따로 만들어서 철기라든지, 신발, 맥주, 빵 이런 것들을 기업소 이름 달고 팔아요.”

강철공장이 맥주를 만들어 파는 등 기업에 이익만 된다면 공장의 원래 생산 품목과는 전혀 다른 상품을 개발해 판매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D 씨는 달라진 인력 시장의 관행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지금은 무역회사들도 과거처럼 개인에게 일을 주고 돈이나 물건으로 비용을 지급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기업소들에 인력을 요청해서 그에 대해 일공비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해요.”

그러면서 D 씨는 “지금은 낙지(오징어)철이지만, 수산업에 등록이 되지 않고는 바다에 나가는 게 어려워서 기업소에서 수산협동조합에 인원을 파견해서 돈을 벌어 기업운영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을 고용해 행해지던 과거의 오징어잡이 관행이 이제 노력파견 계약을 통한 기업사이 거래로만 이뤄지고, 기업은 수협으로부터 파견 인력의 노임을 지불 받아 경영자금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EEZ 부근에 출현한 북한 오징어잡이 목선. 2018년 7월 하순 (해상보안청 제공)

◆ 왜 지금인가?

기업책임관리제가 소개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도입이 본격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통일연구원 황주희 박사는 이를 그동안 점진적으로 정착해온 제도가 최근에 가시화된 결과로 분석한다.

“정책 발표는 10년 전이지만, 당시는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차원이었고, 실제 현장 적용은 점진적인 과정이라고 봐요. 특히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경제관리 전반을 개편하는 작업이기에 장기적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면서 황 박사는 그동안 기업소법, 농장법, 재정법 등 각 분야의 부문법들에서 제도 도입과 관련한 조항들이 꾸준히 수정 보완되는 과정을 거쳐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책임관리제와 관련한 북한의 공식 매체와 내부자료에 대한 모니터링을 종합해보면, 2022년을 기점으로 그 성과에 대한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2023년에 이어 작년에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요구에 맞는 10대 최우수기업을 선정하는 등 제도 실현에 대한 보도가 늘어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황박사는 제도의 원활한 실행을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북한의 기업이 내포한 구조적 제약에 대해서도 환기했다.

“북한의 고질적인 사회적 과제 부과 행태가 지속되고, 뿌리 깊은 부패의 구조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는 한, 이 제도가 실효성 있게 실행되기엔 여러 구조적 부담 요인이 존재한다고 봐요. 기업의 제한적인 자금 조달 역량도 또 다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북한 기업의 자금난은 심각한 것으로 파악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와중에 기업 현장에 돈주들이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B 씨의 설명이다.

“기업간 거래를 활성화하도록 하지만 실제 자재를 구입할 비용이 없어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인데, 돈주들이 중간에서 거간꾼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어요”

기업책임관리제가 활성화되면서 기업들의 자율성이 늘어났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최근 기업과 더불어 부상하는 돈주, 그들의 활약상을 살펴보고, 이들은 과연 누구인지 진단하는 것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계속)

북한 지도 제작 아시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