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군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에 참가한 김정은. 지방공장에서 생산한 국산 소비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4년 12월 21일 조선중앙통신에서 인용

최근 북한에서 ‘기업책임관리제'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기업의 자율성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부를 늘리는 돈주의 행태가 확산하고 있다. 내부 정보를 통해 이들이 돈을 버는 구체적인 수법에 대해 살펴보고, 새로운 경제질서 하에서 부상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지 분석한다. (전성준 / 강지원)

신흥 부유층 ‘돈주’, 김정은 시대의 흥망성쇠 (1) 시장을 무대로 등장한 돈주, 대몰락의 서막

◆ 제도는 완비됐지만 자금 부족

지금까지 연재를 요약해 보자. 코로나19 팬데믹을 기화로 김정은 정권은 국가주도의 강력한 경제개편을 실현했다. 그 핵심은 무역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해 대중국 수입에 의지하던 경공업소비품의 국산화를 다그치며, 이를 기반으로 상업관리소와 국영상점을 중심으로 하는 국영유통망을 구축한 것이다. 당국은 소비품 국산화를 실현하고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을 높일 목적으로 ‘기업책임관리제'를 도입했다.

보기에 꽤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제도적 틀은 완비됐지만 그것을 작동시킬 동력, 자금이 국가에 없는 것이다.

양강도에 거주하는 아시아프레스 내부 협력자 B 씨는 지난 6월 이렇게 전한다.

“필요한 자재를 사려고 해도 자금이 필요하고, 생산한 것들이 장마당이나 개인들, 또는 돈을 낼 수 있는 단위(기업)들에 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구조는 좋지만, 실제 돈이 돼서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가는 게 어려운 상황이예요”

바로 이 지점을 돈주가 파고들어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B 씨는 말한다.

“어렵게 생산하더라도 (기업에) 생산품을 구매할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주들이 중간에서 돈을 대주고 거간꾼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어요”

 

◆ '호미 장사'로 본 돈벌이 방법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량강도 혜산시의 한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협력자 C 씨는 지난 6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요즘 김매기철이라서 OO 공장에서 호미를 생산해 농장에 판매하고 있는데, 사실 내막을 알고 보면 돈주가 돈벌이 하고 있어요. 한 개에 1,200원짜리 호미를 공장에 주문해서 농장엔 2,800원에 팔아요. 가을에 옥수수, 감자 같은 거로 받는대요. 공장에선 호미에 자루까지 맞춰서 바로 쓸 수 있도록 보내준다고 해요”

이 거래의 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농장에서는 호미가 필요하지만 돈이 없다. 공장은 호미 수요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생산할 자금이 없고, 혹 생산한다 해도 농장의 대금 지불이 가을까지 지연될 것을 알기에 선뜻 생산에 나서지 못한다. 이때 돈주가 중간에 개입한다. 농장에서 필요한 호미 수량을 확인하고 공장에 주문을 넣은 뒤 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대준다. 그리고 완성된 호미를 받아 농장에 넘긴다.

농장은 그 호미로 농사를 지어 가을에 돈주에게 식량으로 대금을 지불한다. 돈주는 적기에 농기구를 제공하고 외상거래를 감수한 대가로 엄청난 이윤을 챙긴다. 원가 1,200원에 조달한 호미를 2,800원에 판매해 6개월 만에 130%를 상회하는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 국가경제 돕는 돈주

시설은 노후화됐지만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생산 가동 중 인 듯. 2024년 10월 자강도 만포시를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위에서 살펴본 돈주의 역할은 모든 참여자에게 이익이 된다. 멈춰 있던 공장이 가동할 수 있고, 농장은 필요한 농기구를 적기에 확보해 농사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노동자와 농장원은 가치를 창출해 노임을 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공장과 농장은 각각 국가계획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의도한 건 아니지만, 돈주의 역할이 국가경제 활성화로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건 돈주다. 그러나 C 씨는 돈이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 사람이나 하는 건 아니예요. 공장 간부와 토의해서 하는 거예요. OO 공장만 아니고 다른 지방공장들도 주문형태로 생산을 하는데 거기 돈주들이 이런 식으로 기업소 명칭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어요”

◆ 지위를 가진 '합법적' 돈주들

주목할 점은 이런 활동이 개인 차원이 아닌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C 씨의 말이다.

“지금 여기 돈주들 치고 기업소, 단위들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정책에 맞게 (기업의)책임자나 부원으로 등록해서 출근도 하고, 구색을 맞춰서 지위를 가지고 돈벌이를 해요”

그러면서 C 씨는 “기업소 책임자, 상업관리소 상품공급부원 이런 (돈 되는)자리들에 다 돈주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간부들 가족들도 있다"고 전했다.

공식 국가기관에 등록해 합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그 간판을 활용해 사업을 전개하는 돈주들은 더 이상 음지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기존 간부층 가족이거나 권력층과 연결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B 씨는 이러한 현상이 양극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돈주들이 국가정책을 이용해서 직업 가지고 벌이를 하고 있어서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없는 사람은 그냥 일공으로 일할 수밖에 없어요”

◆ 新 돈주의 등장

지금까지 우리는 5회에 걸쳐 김정은 정권의 현 경제질서 하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돈주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이들을 과연 과거와 같은 돈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부터 이들이 전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돈주라고 볼 수 있다. 즉, 新돈주 계층이다.

첫째, 성격의 변화다. 과거 돈주는 시장 형성과 함께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상업자본가'였지만 현재는 권력과 결탁하거나 스스로가 권력인 ‘권력밀착형 자본가'로 변모했다.

둘째, 활동 방식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장에 참여해 개인 수완으로 부를 쌓았지만, 지금은 국가기관의 직위를 가지고 국영경제의 테두리 안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셋째, 국가와의 관계가 전환됐다. 과거에는 이권을 둘러싸고 국가와 제로섬 게임을 벌였다면, 현재는 상호 의존하는 윈-윈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 제로섬에서 윈-윈으로, 상생 구조로 전환

과거 국가와 돈주의 관계는 경제 주도권과 시장으로부터의 이익을 둘러싼 경쟁관계였다. 국가는 위협적으로 성장한 돈주를 탄압과 숙청으로 통제했고, 돈주들은 국가의 횡포에 반발심을 품었다. 돈주와 국가는 적대적 구조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구조가 형성됐다. 국가는 돈주에 의지하고, 돈주는 국가에 야합하는 상생 구조로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과 결탁한 돈주는 국가 시스템 내에서 합법적으로 돈을 벌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국가는 돈주의 자본을 활용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정권으로서는 좀처럼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관계에 묶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김정은 정권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경제 발전을 위해 新돈주 세력의 힘을 빌리고 있지만, 이들이 너무 강해지면 다시 정치적 위협 요소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과 新돈주 세력의 '밀월'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끝)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북한 지도 제작 아시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