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서 시작된 영웅주의 교육은 군대에서 완성된다. 10년 간의 병영생활 동안 북한 청년들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하루 3~4시간의 정치학습을 받으며 ‘영웅되기’를 내면화한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포로가 되는 대신 자폭을 선택한 북한 병사들의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군 내부의 체계적 세뇌 시스템이 있다. 아시아프레스는 탈북민 A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병영 내 영웅주의 교육의 실태를 살펴본다. A 씨는 2000년대 초중반 북한군 폭풍군단에서 복무했다. (전성준 / 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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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영은 거대한 영웅 공장
Q. 군 복무 당시 병영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
병영 내에는 구호들이 곳곳마다 있다. ‘최고사령관 동지를 결사옹위 하는 총폭탄이 되자!’,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같은 것들이다. 이런 구호를 매일 보고 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된다.

Q. 영웅주의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나?
하루 3~4시간의 정치학습이 매일 진행된다. 주 내용은 위대성 교육, 수령의 명령을 어떻게 잘 관철했는지에 대한 사례들, 항일무장투쟁시기와 한국전쟁시기 영웅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교육한다. 평화시기의 영웅들 사례, 명령 관철을 위해 희생한 사례도 교육하는데, 전형이 되는 사례를 창조해서 일반화하는 것이다.
Q. 그런 교육이 병사들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치나?
군대처럼 닫힌 사회에서, 특히 10년 간 휴가도 거의 없이 병영생활만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 듣다 보면 그 가치에 빠지게 된다. 다른 선택을 못하게 된다. 모범사례들이 했던 것처럼 나도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다는 정신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정신상태는 아주 무섭다.
◆ 영웅의 사례가 만든 비극의 연쇄
Q.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예전에 홍경애라는 여성 군인이 불붙은 건물에 뛰어들어 김일성 초상화를 꺼내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이 알려지면서 홍경애는 영웅이 되었고, 그의 집은 사적관이 되어 학생들이 찾아와 영웅의 탄생과 성장과정에 대해 학습하는 곳이 되었다. 그녀가 복무하던 소대는 ‘홍경애 영웅소대’가 되었고 그녀가 쓰던 생활총화 기록집, 일기 등을 교양자료로서 전군의 군인들에게 학습시켰다.
※ 생활총화 : 북한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반성회의로, 각자의 소속 조직에서 주 1회 열린다.
Q. 어떤 효과가 있었나?
어떻게 됐을까? 그 이후로 화재만 나면 군인이 그 속에 뛰어드는 일이 발생했고, 희생자도 속출했다. 급기야 위에서 무분별한 희생을 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학습효과, 선전효과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A 씨의 증언은 북한의 영웅주의 교육이 단순한 선전을 넘어 실제 행동을 유발하는 강력한 추동력임을 보여준다. 한 명의 영웅 사례가 전군에 학습되면서 유사한 희생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이러한 교육이 개인의 합리적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집단적 모방 행동을 유도한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 개인의 성취를 위한 과잉충성의 함정
Q. 왜 병사들은 그토록 희생을 감수하려 하나?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나는 데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북한에서 개인의 출세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노동당원이 되는 것이다. 군복무 기간은 노동당에 입당하기 위한 최적의 시기로 여겨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10년 간의 군생활에 한 건의 결함도 없이 충실해야 한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제대 시점이 임박함에도 입당하지 못하는 군인들이 수두룩하다.
Q. 입당을 못하면 어떻게 되나?
10년 간 군복무를 마치면서도 입당을 못하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일종의 수치다. 전역을 앞둔 군인들은 뭔가 과잉충성을 해서라도 입당하고자 하는 압박을 느낀다.
Q. 과잉충성이라면?
군복무 시절, 인접 부대의 사례인데, 탈영도 많이 하고 문제를 많이 일으키던 인물이 있었다. 전역을 앞두고 병실에 수류탄을 던지고는 그 위에 철모를 두 겹을 놓고 몸으로 덮었다. 이보다 앞서 김광철이라고 훈련 중에 사고로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소대원들을 구원해 영웅이 된 사례가 있었다. 이를 모방한 것이다. 전역을 앞두고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고 입당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내장 파열로 죽었다.
이는 북한 사회에서 노동당 입당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개인의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병사들은 극단적 선택을 합리적 판단으로 쉽게 받아들이는지 드러낸다.
◆ 상상력의 한계, 다른 선택지의 부재

Q. 이런 선택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상상력 안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면, 갈등도 하고 더 좋은 선택을 할텐데... 그게 안 되는 것이다. 일종의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회인 것이다.
A 씨의 분석은 북한 영웅주의 세뇌의 핵심을 짚는다. 문제는 강제가 아니라 대안의 부재다.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희생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는 폐쇄된 인식 체계 속에서 이뤄진다.
◆ 러시아 파병, 병사들에게는 ‘기회’

Q. 만약 군복무 중에 러시아 파병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나?
만약 내가 군복무 할 때 파병이 있었다면 나는 무조건 간다. 어린 나이에 군 생활은 힘들다. 못 먹고, 못 자고, 얻어 맞고 그런 상황인데, 제대로 먹을 수 있고, 병영생활이 아닌 환경이라면 100% 간다고 확신한다. 기쁘게 갔을 것 같다.
Q. 전장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군대 내에는 국가가 바라는 것을 병사들이 자원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당이 바라는 것, 수령이 원하는 것을 계속 듣고 세뇌되다 보면, 나도 거기에 소속이 되고 싶고, 일부분이 되고 싶다는 상태가 된다. 만약 전장에 갔다가 살아서 온다면 영웅이고, 희생되더라도 영원히 기억된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 효과는 대단하다. 국제사회, 그리고 직접적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미국이나 한국이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 못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영광으로 믿도록 철저히 교육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서는 아시아프레스 내부협력자들의 보고를 통해 현재 북한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우 전쟁의 새로운 영웅을 통한 영웅주의 고취의 분위기에 대해 알아본다. (계속 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