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인 북한병사.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2025년 9월 양강도 혜산시를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지난 8월 22일 조선중앙TV에서 공개한 영상 속에서 영웅으로 내세운 이들 중 다수는 포로가 되는 대신 수류탄으로 자폭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세뇌의 안타까운 희생자인 이들의 사례가 북한 현지에서 새로운 영웅주의를 고취하는 악순환의 교육 자료로 쓰이고 있다는 소식을 아시아프레스 내부 취재협조자들의 보고를 통해 살펴본다. 북한에서 위험하게 진행되고 있는 영웅주의 세뇌의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논의한다. (전성준 / 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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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우전의 자폭영웅, 새로운 선전자료가 되다

수류탄으로 자폭한 전사자들 중에는 10대의 청년들도 다수 있었다. 2025년 8월 22일 조선중앙TV에서 방영한 해외작전부대 축하공연에서 인용.

폭풍군단 출신의 탈북민 A 씨는 김정은 정권이 띄우고 있는 ‘러우전 영웅’들의 선전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영웅주의를 강조하는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서 그 선전가치가 엄청날 것이다. 과거에는 항일투쟁, 전쟁 시기의 영웅들의 사례를 가지고 병사들을 교육하고 선전했다. 그런데 사실 항일투쟁은 거의 100년 전 이야기고, 한국전쟁만 해도 벌써 70년이 넘었다. 이게 감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그런데 이번 러우전쟁의 영웅은 현실의 전쟁, 현재의 영웅이다. 실감나는 사례인 것만큼 효과도 클 것이다”

아시아프레스 북한내부 취재협력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실제로 당국이 전사자를 영웅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8월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 현장에서 확인된 영웅주의 선전

9월 말, 북부에 거주하는 취재협력자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영웅들을 선전하는 기록영화가 자주 나오고, 학습회나 강연회에서도 ‘조국을 위해 희생한 청년들이며 역사에 오래 남을 영웅들’이라고 대대적으로 소개, 선전하고 있다”

협력자는 여성동맹의 학습 분위기도 전해주었다.

“9월 27일에 열린 여성동맹 학습회에서도 기록영화를 상영했다. 모두 여성이다 보니 아들이나 자식을 상상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감동해서 떠는 사람도 있었다. 원수(김정은)가 흐느끼는 것을 보고 따라서 우는 사람도 있었다”

일반주민의 반응도 당국의 의도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전사자에 관해 비판이나 불만을 입에 담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주변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조국을 위해 죽었고 영원히 기억되니 다행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학교에서는 영웅을 따라 배우는 운동(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보고는 러시아 파병 전사자들이 이미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영웅 서사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에서 시작된 영웅주의 교육이 군대에서 강화되고, 다시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순환 구조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군 병영 내에 설치된 선전 게시판. “전쟁준비에 내일은 없다!”는 문구가 보인다. 2025년 9월 양강도 혜산시를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 세뇌의 해독제는 정보의 자유

북한의 영웅주의 세뇌 시스템이 이토록 강력한 이유는 정보의 독점 때문이다. 오직 하나의 서사, 하나의 가치관, 하나의 영웅상만을 강요당한 주민들은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하지만 외부 정보가 유입될수록 이 시스템의 허상이 드러난다. 다양한 영웅의 모습,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접하게 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비로소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된다. 외부의 소식을 전하는 USB 메모리 한 개, 라디오 한 대가 70년간 쌓인 세뇌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은 정권이 그토록 정보 차단에 혈안인 것도, 외부 정보야 말로 당국이 내세운 영웅의 일그러진 허상을 비춰주는 거울이며, 나아가 통치 기반을 뒤흔들 가장 위험한 적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A 씨가 강조했던 ‘다른 선택지의 부재’는 정보 차단이 만든 결과다. 북한 병사들이 자폭을 선택하는 것은 용기나 충성심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도록 철저히 통제된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주민들의 진정한 해방은 정보의 자유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들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그들에게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외부의 정보가 닿아야 한다. 그것 만이 70년간 이어진 세뇌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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