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아시아프레스 취재팀은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맞은편인 중국 장백현에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압록강 너머 혜산 시내 곳곳에 대량의 고급 승용차와 대형 트럭, 중장비 등 중국산 중고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주차되어 있었던 것이다. 밀수 차량이었다. 대량의 차량이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대규모 밀수는 대체 어떤 구조와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북중 양측의 취재협력자와 함께 조사한 결과, 그 구조와 북한의 경제 정책 변화의 일면이 드러났다. (전성준 / 강지원)
◆ BYD부터 토요타까지... 육안으로만 백 수십 대 확인
대량으로 세워진 차량 중에는 중국의 대표 전기차 브랜드인 BYD, 일본의 토요타 등 고급 승용차도 있었으며 대형 트럭, 건설 중장비까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번호판이 제거된 상태였다.
혜산시에 거주하는 협력자들은 “대외경제성과 재경무역회사가 밀수입한 중국산 중고차들이 맞다”라고 확인해 주었다.
국경 밀무역에 정통한 길림성의 무역 관계자는 지난 9월 중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차량 수출은 8월 들어서 집중적으로 되고 있는데, 9월 초순에는 트랙터도 수십 대 넘어갔다고 한다. 승용차는 비야디(BYD) 차량 중고들이 거래가 된다”
이와 함께 차량 부속품(타이어, 서스펜션, 휠 등)도 함께 밀수된다고 한다.

◆ ‘국가밀수’, 제재를 우회하는 북한의 생존전략
차량 밀수의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밀수’라는 아이러니컬한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계속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추가된 2017년 이후, 북한 정부는 제재를 우회해 국가운영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북중 국경을 통한 밀무역을 진행해 왔다. 이름하여 ‘국가밀수’다.
북한 정부기관의 주도와 중국 민간 밀수업자의 협조, 그리고 중국 당국의 묵인 하에 진행되어 온 ‘국가밀수’는 그간 북중 관계 동향을 감지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다.
올해 김정은의 방중을 계기로 북중 국경은 다시 국가밀수로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그 중심에 차량 밀수가 있다.
◆ 혜산, 차량 밀수의 중심

국가밀수의 중심지는 서해 해상 및 중국 길림성 장백현과 마주한 혜산 지역이다. 차량 밀수는 대부분 혜산 쪽에서 진행되는데, 이 도시가 북중 간 자연 경계인 압록강의 상류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얼음길을 이용하지만, 보통은 압록강의 수위가 낮은 지점을 선택해 바퀴 중간까지 물에 잠긴 채 이동한다.
취재협력자가 10월 중순에 알려온 밀수의 구체적인 장소는 혜산시에서 약간 하류 지점에 위치한 김형직군과 고읍 부근이라고 한다.
◆ 차량 밀수의 핵심, 중개 네트워크
차량 밀수에서는 중개인 네트워크가 핵심이다. 장백현의 무역 사정에 정통한 길림성 무역 관계자는 9월 말, 아시아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측 차량 밀수 브로커는 주로 심양이나 장춘의 기업가로, 북한 측이 주문한 차량의 모델과 사양을 토대로 물건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북한 측은 국가기관(대외경제성)의 위임을 받은 무역회사가 보위부(비밀경찰), 세관, 도무역관리국 등의 입회 하에 물품을 들여온다.
최근에는 ‘국가밀수’의 간판 아래 무역회사와 결탁한 돈주까지 개입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혜산의 협력자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개인이 직접 하는 경우는 없지만, 돈주가 무역회사와 결탁해서 돈을 대 들여오고 있다. 돈주들이 직접 소유하는 경우도 있지만, 차량의 대부분은 기업소, 무역회사들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 북한 경제의 살아있는 현장
현재 북중 국경지역에서 활황인 중고차 밀수 현상은 당국의 통제와 시장의 수요, 그리고 부패가 기묘하게 얽힌 북한 사회의 살아있는 단면이다.
북한은 올해 초 개인의 차량 소유를 전격 허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개인의 거래를 제한하고 국가에 의한 통제 기조를 강화하던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큰 결단이 아닐 수 없다.
협력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 내에서 차량은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부의 상징이자 새로운 사업 기회로 자리잡고 있다. 택시와 북한판 렌터카 사업은 북한 내 새로운 수익원으로 급부상했고, 이는 차량 수요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다음 회에서는 국경 현지에서 초망원 카메라로 촬영한 밀수 차량의 사진을 통해 어떤 종류의 차량들이 어떤 목적으로 넘어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계속)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연락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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