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된 중국산 고급 차량이 혜산 시내 공터에 주차되어 있는 모습. 2025년 9월 양강도 혜산시를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최근 압록강 상류의 북중 국경이 심상치 않다. 아시아프레스가 이미 보도한 것처럼, 혜산 시내의 학교 운동장에 중국산 밀수 차량이 가득하고, 압록강의 하중도가 거대한 밀수 기지로 변모하는 등 유례없는 규모의 차량 밀수 현장이 포착되고 있다. 이는 과거 생필품 위주의 음성적 거래와는 차원이 다른, 국가가 주도하는 조직적 유입이다.

대체 북한 당국은 왜 지금, 이토록 거대한 규모의 차량 밀수를 주도하고 있는가? 그 배경을 누적된 차량 수요의 폭발과 국가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한 개인차량 소유 허용 정책이라는 두 가지 핵심 축으로 심층 분석한다. (전성준 / 강지원)

압록강 상류의 한 무인도가 밀수 기지로 변모한 모습. 북한 쪽 철책 안 쪽에는 밀수된 대형 트럭 수십대가 주차되어 있다. 2025년 9월 13일자 구글 어스 위성 사진.

◆ 7-8년간 차량 유입 막혀 억눌린 수요가 폭발

북한은 지난 몇 년간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국경 봉쇄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 기간 차량 완제품은 물론 엔진이나 부품 등 필수 기자재의 수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그 결과, 기존 보유 차량은 수리 부품이 없어 멈춰 섰고, 노후화는 극에 달했다. 군과 공무, 의료 분야는 물론 물류와 건설 현장에 이르기까지 차량 부족으로 국가운영 전반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다.

숯을 태울 때 나오는 가스를 동력으로 이용하는 ‘목탄차’ 적재함에 북한 주민들과 군인들이 올라타고 있다. 열악한 운송 형편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024년 10월 자강도 만포시 근교를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팬데믹 이후 국경이 열렸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중국 당국이 대북 제재 준수를 이유로 차량 및 부품 수출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국은 북한과의 밀수에 협조한 업자를 검거하거나, 뇌물을 받은 국경수비대(변방대) 간부를 색출하는 등 단속의 고삐를 죄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기류가 변했다. 북중 관계가 개선되면서 중국 측의 묵인 하에 차량 국가밀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국경을 넘는 수많은 트럭들은 지난 몇 년간 누적된 차량 부족을 해소하려는 폭발적인 수요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 금기를 깬 정책, 개인차량 허용의 이면

하지만 단순히 수요가 많다고 해서 이처럼 밀수가 성행할 수는 없다. 차량 수입을 위한 충분한 돈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것이 바로 북한 당국의 정책 변화다. 김정은 정권은 최근 정권 수립 이래 80년간 금기시했던 개인차량 소유를 전격 허용했다. 개인도 원하면 자신의 차를 구입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차량이 유통되는 구조다. 차량의 수입과 판매는 국가의 몫이다. 현재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대외경제성 등이 국가밀수로 차량을 들여와, 이를 다시 기관·기업소 및 구매력 있는 개인에게 되파는 방식이다.

아시아프레스 양강도 협력자는 11월 중순 다음과 같이 전했다.

"개인들 3~5명이 돈을 모아서 차를 구입해 필요할 때 서로 나눠 쓰는 사례도 있는데, 그 때문에 요즘 자동차운전 면허를 따려는 사람들이 늘어섰다"

즉, 국가는 독점 수입 판매상이 되고, 개인은 합법적인 구매자가 되는 새로운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국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사회주의 원칙을 깨면서까지 개인에게 차를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