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밭 가운데서 작업 중인 사람들. 농장원들일까. 여성은 손가락을 상했는지 밴드 같은 것을 붙이고 있다.

올가을 북한 함경북도 농촌에서는 농민과 당국 사이 '기싸움'이 진행 중이다. 기본 분배(약 270kg) 이외에 추가로 받게 된 초과 생산분 식량을 현물로 받을지, 아니면 현금으로 받을지를 두고 당국과 농민 사이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갈등의 이유와 양상에 대해 현지 협력자들이 조사한 내용을 정리했다. (전성준 / 강지원)

◆ 현물 대신 ‘종이’ 돈 주려는 국가에 분노

옥수수 추수 중인 사람들. 옷차림으로 보아 인근에서 동원된 노동자들인 것으로 보인다. 압록강에 접근을 차단하는 철조망에는 ‘고압주의’라고 써져 있다.

현지에서 농장을 조사한 두 명의 취재협력자 중, A 씨는 도시에 거주하며 인근 농장을 조사했고, B 씨는 현지의 농장원이다. 두 농장 모두 농장원이 약 500명 정도 규모로, 논보다는 밭농사가 중심인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농장이다.

―― 올해 분배와 관련해 현지 농민들의 불만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상황인가?

협력자 A : 기본 분배(270kg)를 넘어서는 초과 생산분은 식량이 아니라 현금으로 주겠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올해 분배로 350kg을 가져가게 됐다고 하면 추가분으로 받는 80kg에 한해서 국가가 수매 가격으로 계산해서 현금으로 지불한다는 거다.

※ 식량 수매 가격은 국가가 농장이나 농민으로부터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 정한 국정가격을 말한다.

―― 현금 지불이 왜 문제인가?

협력자 A : 우선, 수매 가격이 문제다. 옥수수 1kg에 수매 가격이 3,000원인데, 개인거래 가격보다 1,000원 이상 싸다. 농민들 입장에서 앉은 자리서 손해 보는 것이니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협력자 B : 식량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현금을 갖고 있는 게 손해다. 현금 분배로 농장원 1인당 수십만 원씩 받았지만 돈이 너무 가치가 없어서 큰 도움이 안 된다.

최근 북한 화폐의 지속적인 가치 하락으로 북한 경제는 인플레이션에 빠졌다. 연초에 1달러당 25,000원이었던 환율은 12월 말 현재 기준 42,000원으로 168% 상승했다. 연초에 각각 27,000원, 8,800원이었던 휘발유와 백미는 현재 43,000원, 17,500원으로 159%, 198% 급등했다. 원화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현금을 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 농장원들이 불만을 가지는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 국가의 속내, 한 톨의 식량도 개인 거래하지 못하게

추수 작업에 동원된 학생들. 인공기가 새겨진 옷을 입은 소년이 중국 쪽 관광객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국가가 굳이 현물 대신 현금으로 주려고 하는 이유는 뭔가?

협력자 A : 초과 생산분 식량을 농장원이 갖고 있으면 언젠가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개인 거래로 국가 밖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국가가 미리 사들여서 그런 가능성을 없애겠다는 거다.

협력자 B : 원래 의도는 추가 생산분을 국가가 현금으로 사거나, 생필품으로 대체해서 농장원들에게 돌아가게 하겠다는 취지이다. 현물로 주면 다시 개인을 통해 유통이 되니까. 국가가 식량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의도인 거다.

◆ 농장은 농민과 국가 사이에서 어정쩡한 입장

―― 농장원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 농장 측은 어떤 입장인가?

협력자 A : 농장원들이 현금대신 식량을 달라고 하면서 농장도 고민이 많다. 그래서 옥수수 같은 주곡은 국가가 가져가더라도, 그 외 비알곡(콩, 깨, 고추 등)을 ‘부식물’이나 ‘우대곡’이라는 명목으로 최대한 농장원들에게 현물로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협력자 B : 농장이 지방 공장에서 생산하는 된장이나 빵, 생필품 등을 현물로 받고 그것을 초과 생산분에서 공동으로 갚는 방식도 시도하고 있다. 농장원들도 어차피 사야 되는 것들이니 그 방식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최근 북한 당국이 지방공장에서 생산된 체화상품(이월상품)을 농촌에 설치된 국영상점들에 보내 농장원들에게 일종의 강매로 떠넘기고 있다는 현지보고도 있어 추후 보다 자세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 농민의 불만은 ‘생존형’에서 ‘이익형’으로 질적 변화

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한 농장 경비 막 안에 누군가의 다리가 반쯤 보인다. 해어진 양말을 뚫고 나온 뒤꿈치가 고단한 농장원의 삶을 웅변하는 듯하다.

2025년 가을 분배 현장에서 목격된 가장 큰 갈등은 ‘분배의 유무’가 아닌 ‘분배의 방식’이었다. 기본 분배가 어느 정도 보장된 상황에서, 초과 생산분을 둘러싼 국가와 농민 간의 이익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는 식량 유통 독점을 위해 초과분을 현금으로 강제 수매하려 하며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불이익을 농민에게 떠넘기는 효과가 발생하고, 농민들은 지속적인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피하고자 현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큰 변화다. 과거 북한 농민들의 불만이 ‘당장 먹을 쌀이 모자란다’는 생존의 위기에서 기인했다면, 올해의 불만은 ‘내 노력의 대가를 정당한 가치(현물)로 보상받고 싶다’는 이익 극대화의 관점에서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장원들의 이런 불만을 빠르게 감지하고 대처하고자 하는 농장의 노력도 과거 관료주의적 농장 운영 태도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다음 회에서는 국가가 농민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주도의 양곡관리시스템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계속)

사진은 모두 2025 9, 아시아프레스 국경취재팀이 평안북도 삭주군을 중국 측에서 촬영한 것이다.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북한 지도 제작 아시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