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이 끝난 옥수수 밭을 부림소를 이용해 갈아 엎고 있는 농장원들. 농기계와 연료가 부족한 북한 농촌에서 소는 여전히 중요한 노동력이다. 2025년 9월 평안북도 삭주군을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김정은 정권이 추진하는 농정 개편의 종착점은 ‘증산’ 그 이상이다. 과거 장마당으로 흘러가던 식량의 줄기를 완전히 끊고, 생산부터 판매까지 국가가 모든 과정을 장악하겠다는 의지가 지난 가을 분배 현장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농촌 현지에 법무부 검열팀의 상주를 비롯해 강력한 식량의 이동 통제로 완성되어 가는 ‘국가 식량 독점 체제’의 실체를 파헤친다. (전성준 / 강지원)

◆ ‘장마당 의존’ 탈피, 계획의 분화, 새로운 양곡 관리 시스템

1990년대, 북한의 배급제도가 거의 붕괴되면서 장마당은 주민들의 주된 식량 구입처가 되었다. 그 공급원은 농장에서 생산한 곡식 중 계획량을 제외한 여유 알곡과 해외에서 유입된 수입곡이었다. 군이나 공공에 공급된 식량이 부정하게 장마당으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양곡관리시스템이 약 3년 전부터 재건되면서 장마당에서의 식량 유통은 금지되었고, 오직 국영 ‘양곡판매소’를 통해서만 식량이 거래되고 있다.

양곡판매소가 운영 중이다. 간판에 ‘연풍량곡판매분소’라고 적혀 있고 안 쪽에 식량을 구매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도둑을 경계해 철문과 살창을 설치했다. 2025년 9월 양강도 혜산시를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새로운 농업개편 정책은 국가 독점 양곡관리시스템을 완결하는 중요한 고리로, 계획의 분화를 통해 양곡의 확보 및 공급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북한의 양곡관리정책은 계획의 명분으로 농촌에서 생산한 알곡을 국가가 걷어, 전체 주민에 배급하는 방식이었다. 국가가 수매와 공급을 모두 관할하고 통제하는 이러한 방식은 운영과 관리 측면에서 많은 비용을 발생시켰고, 비효율의 원인이 되었다.

새로운 농업개편 정책은 과거 국가계획을 군이나 경찰 등 필수 공공인력에 필요한 식량 확보를 위한 ‘국가의무수매계획’과 국가의 중재 하에 농장이 주변 공장이나 기업과 직접 계약을 맺고 식량을 조달하는 ‘계약수매계획’으로 나누어 그 효율성을 높였다.

협력자 B 씨는 현재의 배분 구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마디로 식량 10t을 생산한다면, 3t은 국가가 가져가고(국가의무수매) 4t은 주변 공장기업소에 주고(계약수매) 3t은 농장 운영에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 계약수매는 국가의무수매계획을 완수한 조건에서 농장원들의 분배량을 고려하여 농장의 재량으로 결정한다. 국가는 농장이 제출한 수매량에 기반해서 주변의 공장, 기업소와 수매계약을 중재한다. 농장법 등의 북한 법률에서는 계약 시 양곡의 가격은 원칙적으로 농장이 정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지난해(2025년) 가을 농촌 현장에서는 계약 가격을 국가(양정국)이 정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 ‘나라가 돈벌이 한다’는 비판도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농민들의 평가는 어떨까? 현지의 농장원들은 과거에 비해 효율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기업소들은 량정국에서 지정한 수량만큼 가져가는데, 도중 유실이 없이 직접 기업소 노동자들에게 갈 수 있어서 좋다”

B 씨는 이어서 효율성은 좋지만, 운송비용을 기업소가 부담하면서 수량의 약 10%가 유실되는 등 부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국가의 부담이었던 운송비용이 사실상 기업에 전가되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B 씨는 양곡판매소를 통해 식량 판매를 국가가 독점하는 구조에 대해 “나라가 돈벌이를 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즉, 과거 배급제도 하에서 국가는 농촌에서 생산한 알곡을 도시 노동자들에게 거의 무상에 가까운 가격으로 공급했지만, 현재 제도에서 국가가 양곡을 수매가격 보다 비싼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농민을 착취해 그 마진을 챙기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중학생 정도일까? 농촌 작업에 동원된 학생들이 취재진을 향해 미소를 보내고 있다. 2025년 9월, 평안북도 삭주군을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 ‘법무부’ 검열 팀 농촌에 상주, 철저한 알곡 관리

북한 당국은 새로운 양곡관리시스템을 구축한데 이어 제도의 안착을 위해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회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당국은 농민들이 추가 생산을 통해 받게 된 인센티브를 현물 대신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협력자 B 씨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추가생산분을 현금으로 지급하려는 이유는 현물로 줘 봤자 다시 개인을 통해 유통되니까 그걸 막겠다는 것이다. 국가가 식량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거다”

이와 함께 농민 개인 간 식량유통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협력자 A 씨는 농장의 삼엄한 분위기를 보고했다.

“10월부터 수확고 판정, 알곡생산전반을 통제하는 법무부 검열팀이 파견돼서 양정국과 함께 생산량에 대한 집중관리를 하고 있다. 농촌에서 15kg 이상의 식량 이동은 이유를 불문하고 몰수하는데, 몰수된 식량은 양정국 창고로 입고시킨다. 만났던 농장원 주변에도 식량 회수당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10호 초소의 검열관이 다가오는 경운기를 향해 깃발을 들어 정지 신호를 하고 있다. 10호 초소의 원래 목적은 국경을 오가는 인원에 대한 검열과 단속이지만, 가을철 식량 단속도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5년 9월, 평안북도 삭주시를 중국 측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협력자 B 씨도 농촌의 식량단속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아직도(12월 말) 농촌입구마다 가을에 세운 경비초소들이 그대로 있어 오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식량 단속을 하고 있다. 쌀을 팔아 돈을 만들고 싶은 농민들이 있지만, 개인 간 거래 통제가 심해 못하고 있다”

아시아프레스 내부협력자들의 보고로 미루어 볼 때, 국가의 식량 장악력은 1990년대 대기근 이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물론 북부 지역의 정보에 한정되지만, 양곡관리시스템 구조상 전국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양곡판매소’로 모이는 도시민

양곡판매소를 중심으로 하는 식량의 국가 전매제가 안착되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국가 식량전매제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생겨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아시아프레스의 양강도 취재협력자가 지난 11월 다음과 같이 전했다.

“공급이 안정화되면서 과거처럼 식량을 축적하려는 경향이 줄어들고 있다. 량곡판매소를 통해 정기적으로 식량이 공급되면서 오히려 식량 걱정하기 보다는 기업소의 로임으로 국가 식량을 사먹어야 한다는 의식들이 강해지고 있다. 이제 무직자들 보기 힘들다”

한편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국가는 농장의 ‘예비곡’까지 미리 가져다 도시의 양곡판매소에 공급하며, 주민들을 국가 공급망 아래 묶어두고 있다.

식량생산자인 농민들이 고질적인 식량 부족을 겪는 북한 농촌에서는 매년 봄 농번기마다 식량이 바닥나는 ‘절량세대’가 발생하며, 이는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이어졌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농장들은 가을 분배 시 다음 해 봄에 사용할 2~3개월 치 식량을 ‘예비곡’으로 떼어 두었다가 봄에 배급해 왔다.

협력자 A 씨가 전한 내용이다.

“농장에서 거둔 수매곡은 상업관리소를 통해 시내 량곡판매소로 나갔다고 한다. 또한 농장들이 보유한 예비곡을 먼저 가져다 도시들의 량곡판매소에 공급하고 실제 농민들에 대한 공급이 필요할 때 국가가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그거에 대해서 농장원들이 큰 의견이 없다고 해요”

◆ 김정은의 진짜 목표는 ‘칼로리 통치’

농업정책 개편을 통해 김정은 정권이 노리는 것은 단순한 식량생산 증대가 아니다. 그 궁극적 목적은 식량의 생산, 유통, 판매 전 과정을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주민들의 생존권을 국가의 손아귀에 완벽하게 틀어쥐는 것이다.

국가가 주민의 식량 접근권을 완벽하게 통제해 ‘칼로리 통치’를 구현하려는 김정은 정권의 야망은 점차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수량과 가격 면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양곡판매소를 운영하느냐가 향후 분석과 판단의 잣대가 될 것이다. (끝)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북한 지도 제작 아시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