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남도의 농촌에서 수확하는 모습. 70년대의 농민의 살림은 가난하면서도 먹을 것만은 풍족했다. 그것도 90년대의 ‘선군시대’의 도래와 함께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2008년 9월 황해남도 촬영 : 심의천

황해남도의 농촌에서 수확하는 모습. 70년대의 농민의 살림은 가난하면서도 먹을 것만은 풍족했다. 그것도 90년대의 ‘선군시대’의 도래와 함께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2008년 9월 황해남도 촬영 : 심의천

 

(4)농민의 '의욕'저하
북한에서는 농민을 업신여겨 '농포'라고 부른다. '농노'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북한의 농업은 '세습제'와 마찬가지다. 농민의 아이는 반드시 농민이라는, 봉건시대와 같은 신분제도가 존재한다.

이것은 그러지 않으면 농장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이 힘들고 생활이 가난한 농민이 되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에, 군인이 제대할 때에 농장에 강제적으로 배치되는 일도 적지 않다.

농민자신도 '농포'라고 자조할 정도니 그 지위는 사회에서도 최하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농민들로부터, 지금까지 봐 온 것과 같은 삼중고, 사중고의 악조건이 '의욕'을 뺏고 있다.

<림진강>의 구광호 기자에 의하면, 황해남도의 농장간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봄에 우박이 내리고 벼가 넘어져 버렸다고 해도 그것은 그뿐, 다시 일으켜 세우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럴 기력도 농민들에게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일년 내내 농사일을 했는데 수중에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에 의욕이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 때문에 농장원은 가능한 대충 일하려고 한다. 작업능률은 대단히 낮을 수밖에 없다.

다른 현지 주민은 "농민은 일하지 않고, 농번기 지원에 동원된 학생과 주부가 일하고 있다. 농민은 참견할 뿐이다"라고 그 모습을 전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농장간부는, "부족한 비료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농장의 작업이 시작되기 전의 새벽2시에 일어나 퇴비를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하루 두 끼의 부실한 식사로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날 기력도 없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라고 구광호 기자에게 말하고 있다.

배고픈 것은 인간 뿐이 아니다. "밭을 경작하기 위한 소도 충분히 사료를 먹지 못해 빼빼 말라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황해남도 40대 여성)

황폐하고 자연재해에 약해진 국토, 경제파탄에 기인한 전력과 영농자재의 절대적 부족, 집단농업의 비효율성, 간부의 부정부패, 부담을 강요당하는 농민의 노동의욕 저하...이러한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북한의 농업은 생산부진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여파를 정면으로 받은 농민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황해도의 도시주민의 현상을 분석한다. (계속)
(※1)한국통계청 '북한통계 (2011년)'를 토대로 산출. 북한의 경지면적은 약 191만ha. 수해피해 규모가 북한 발표대로인가는 불명.
(※2)유엔식량농업기관(FAO)에서 2012년 4월에 발표한 '세계산림현황 2011'에 의함. 산림면적은 1990년의 820만ha에서 566만ha로 줄었다. 이 보고서도 벌채된 나무의 대부분이 연료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별연재: 곡창지대 황해도의 식량위기] 기사 일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