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휴일을 즐기는 주민들 옆에서 휴식 중인 병사들

공원에서 휴일을 즐기는 주민들 옆에서 휴식 중인 병사들. “군대의 어려운 식량 사정으로 말단 병사들 속에서 영양실조 병사가 속출하고 있다. 농가와 주민들로부터 식량을 빼앗는 사건도 일어난다고 한다. 사진은 밭에서 옥수수를 훔쳐 강변에서 구워 먹는 인민군 병사들, 모두 여윈 모습이 눈에 띈다. 2008년 9월 평양시 강동군, 촬영 장정길

<굶주리는 조선인민군, 그 실태와 구조> 기사일람

[해설] 군의 굶주림이 시작된 것은 80년대
"1975년경까지는 군대도 배불리 먹었다. 백미와 잡곡이 5대5 정도 섞였지만, 밥은 하루 800g. 달걀, 고기도 지급되고 병사들은 민간인보다 체격이 좋았다. 군대에 가지 않으면 입당도 출세도 할 수 없었으니까. 예전에는 부모들이 먼지 앞다퉈 자식을 군대에 내 보냈다. 군대의 식사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부터이고, 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부터 병사들 속에서 아사자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재일 탈북자 리상봉 씨는 말한다.

또 북조선 내부 기자 김동철도 다른 탈북자도 공통된 증언을 하고 있다. 군 생활의 악화는 북한 경제의 몰락과 함께 악화됐는데 특히 영양실조자가 많은 것은 건설 전문 부대로 '공병국' 부대 안의 7, 8총국으로 불리는 부대다. "규정 식사량은 같지만 중노동이기 때문이다"라고 김동철 기자는 말한다.

이른바 건설 부대에 배속된 병사는 10년간의 복무 기간 총 한번 쏴보지 못하고 오직 삽과 곡괭이를 메고 군 복무 기간을 보낸다. 조선 인민군 전체 병력 중 건설부대가 얼마나 되는지 불명이지만 한국 정부는 절반 정도로 보는 것 같다.

◆군 내부의 식량 횡령으로 굶주린 병사들이 도둑으로
군의 식량 사정이 악화되면서 장교나 간부들이 부대 식량을 횡령하게 되었다. 우선은 가족을 먹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사정으로 암시장에 부대의 식량과 군 품을 암거래 업자에게 넘겨주고 돈을 버는 자(장교, 간부)가 속출했다.

말단 병사까지 내려오는 식량은 점점 줄어들게 되고, 당연히 허기를 달랠 수 없는 병사들은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병사에 의한 절도, 강도, 폭력 사건이 빈발하고 탈주병이 끊기지 않는 것은 90년대 이후 북한 사회에 상식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 속에서는 군대가 경계,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군대를 '토비, 강도, 공비(공산 비적)'라고 부르는 것이 이젠 당연하게 되었다.

"군대가 도둑질해도 보안서(경찰서)와 보위부(정보기관), 당도 관여할 수 없다. 단속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경무(헌병)만, '선군정치'의 시작과 함께 군에 힘이 실리면서 더 심해졌다.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다."고 리상봉 씨는 말했다. 식량난은 군사 조직 규율의 저하와 민군 관계의 악화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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