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넘어간지 얼마 안된 후쿠오카 출신의 한 "재일" 가족. 뒷줄 가운데의 이기자 씨만 한국에 들어왔다. 1960년대 초 (아시아프레스)

북한에 넘어간지 얼마 안된 후쿠오카 출신의 한 '재일' 가족. 뒷줄 가운데의 이기자 씨만 한국에 들어왔다. 1960년대 초 (아시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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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탈북시키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북한의 갑작스런 핵실험이 있고 난 후인 2016년 1월 중순. 한국에서 낯선 목소리의 남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은 수년 전에 한국에 온 탈북자로, 북한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을 어떻게든 찾아 데려오고 싶고, 그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내 연락처는 다른 탈북자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이런 '이산가족 찾기', '탈북 방조'를 부탁받는 일이 1년에 몇 번 있다. 그러나 나는 일개 저널리스트에 지나지 않는다. 힘은 물론이거니와, 돈도 없다. 누군가가 친 '덫'은 아닌지 경계도 하게 되는 터라, 이와 같은 연락을 받을 때마다 우울해진다. 하지만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테니, 냉정하게 거절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 남성에게는 김정은 정권으로 교체된 뒤 중국과의 국경 경비가 한층 강화되어 탈북하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어려운 상황이라 나 같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으니 한국의 탈북자 지원단체에 상담해 보는 것을 권했다. 그는 짧은 침묵 후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OO현에서 조선으로 건너간 귀국자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딸을 데려오고 싶습니다. 어떻게든 안 될까요?”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오지 않는 날은 없지만 귀국사업, 귀국자에 대해서는 보도되는 일도 '자이니치'인 지인과 친구들과의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귀국사업 개시 후 56년이 지나, '먼 과거의 일'로 취급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대가 바뀌고 귀국한 사람들과 일본에 남은 '자이니치'간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먼 과거의 기억, 친족, 지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더라, 라는 정도의 일인 것이다(영화감독 양영희가 인생을 걸고 귀국한 오빠 가족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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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와 '자이니치'가 귀국자에 대한 기억을 잊어가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귀국자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일본에 전해지지 않고 그 존재와 죽음에 대해서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8년간 중국 등에서 만난 귀국자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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