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귀국자가 기민(飢民)되어 중국에

필자는 62년생. '자이니치'의 북한귀국이 절정에 달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도, 조선인들이 처했던 어려운 삶도 몰랐다. '자이니치'가 북한에 대거 건너간 시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귀국 사업이 끝나가던 무렵인 80년대 전반 대학생이 된 후였다. 조국방문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자이니치'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북한 체제의 이상함과, 귀국한 친족들의 불우한 모습이 언급되기 시작한 때인데, 한국 정권의 모략 정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귀국자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93년 여름 처음으로 북한과 중국 국경에 취재차 다녀온 이후로, 나는 북한 국내에 세 번 들어간 것과, 그 후로도 북한 중국 국경지대에 오가며 합법, 비합법적으로 중국으로 나온 북한 사람들과 만나 취재를 이어오고 있다. 그 수는 천 여명에 달한다. 이렇듯 북한 취재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 것은, 98년 여름 국경 취재에서 느꼈던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두만강을 사이로 북한과 접하고 있는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북한에서 넘어온 엄청난 수의 기민(飢民)이 몰려들었다. 국경에 인접한 조선족 마을들에는 매일 수 십 명 씩 국경을 넘어오는 상황으로, 필자는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닥치는 대로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북부 함경남북도, 양강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드물게 평양, 황해남도 사람도 있었다. 시장과 역에 시체가 굴러다닌다는 소름끼치는 기아체험은 거의 공통적인 이야기로, 이 시기 북한에는 지옥도(地獄道)와 다름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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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취재를 통해 만난 사람 중에 귀국자를 언급하는 남성이 있었다. 함격북도 화성군에서 온 과수원노동자였다.

“2월 쯤에 우리 마을에는 귀국자인 노모와 그 딸이 흘러 들어오듯이 살게 되었습니다. 눈이 쌓여있는데 두 사람 모두 신발도 없이 끈과 천으로 발을 둘둘 감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있는 빈집에 들어가 살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먹을 거리를 구걸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마당에 줄 수 있는 것이 있을 리가 없지요. 얼마 되지 않아 딸이 먼저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저도 중국으로 도망쳐 왔기 때문에 어머니인 아매(아주머니)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있다고는 생각이 안 드네요. 귀국자 중에는 유복한 사람도 있지만 일본으로부터 송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참했습니다. 북한에는 친척도 없으니 꼬제비가 될 수 밖에요. '거지포'라고 불리곤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거지포'란, '거지 귀국동포'라는 의미의 경멸어이다. 그 남성의 증언을 들은 나는, 연변으로 넘어오는 북한 기민 무리 중에서 귀국자들도 있을 것이니,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 해 98년 여름, 두만강 상류의 화룡현 호과촌(和龍県芦果村)에서 취재거점으로 삼고 있던 농가를 방문하니, 전날 밤에 국경을 넘어왔다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부모가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친척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다. 일본어를 할 수 없는 그녀 대신에 내가 후쿠오카현 친척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전화를 받았던 것은 어머니의 언니였다. 갑자기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에 말문이 막히는 듯 했으나, “어떻게든 손을 써볼테니 중국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놀라움과 함께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당혹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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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과촌에서 만난 여성의 부모, 즉 과거 '자이니치'였던 아버지는 97년에 아사했고 어머니와 남동생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헤어질 때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말에 주춤했다.

“일단 북한에 돌아가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데리고 다시 중국으로 나올 겁니다. 어떻게 일본에 데려가 주실 수 없을까요?”

※ 재일 종합잡지 '항로' 제 2호에 기고한 '북한에 돌아간 사람들의 감춰진 삶과 죽음'에 가필 수정한 것입니다. (번역: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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