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오빠와 가족을 찍는 것은 나의 에고(ego)'이라고 단언하는 양 감독.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을 계속한다.

나아가고 싶은 길에서 도리에 맞지 않는 벽과 경계에 막힐 때가 있다. 그것은 법과 제도, 돈, 국적, 성별이거나 조직의 압력과 인간관계의 굴레일지도 모른다. 벽은 때때로 소수자와 약자에게 높고, 경계선의 골은 깊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다.

오사카 시 출신의 영화감독 양영희 씨를, 나는 '인생을 건 월경인'이라고 부른다. 벽을 넘고 압력에 대항하며, 경계선을 점점 넘어서는 그녀의 힘은 압도적이다.

양 감독은 부모님이 제주도 출신인 재일조선인 2세다. 본인이 말하길 '팔팔한 조선총련계 가정'에서 성장해, 소학교부터 대학까지 조선학교에 다녔다. 진로까지 간섭하는 총련조직을 나와서 미국에 가려고 했지만 비자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무국적' 취급하고 있는 조선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소학교 5학년 혹은 6학년 시절 시 낭독회 모습. (양영희 감독 제공)

이 벽을 어떻게든 넘어서 뉴욕에서 영상을 배우고 일본에 돌아온 뒤, 북한에 사는 3명의 오빠와 가족을 오가며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을 완성한다.

3명의 오빠는 70년대 초에 재일조선인 귀환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갔다. 일본에 돌아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 닫히고 통제되어 옴짝달싹 못하지만, 여동생의 카메라 앞에서 오빠와 가족은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도 본 적이 없었던 북한의 일반 가정 생활을 그린 이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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