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중엽에 끄려진 명화 ‘이삭줍기’. 프란스의 화가 밀레의 대표작이다.
옥수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농촌 여성 2008년 10월 황해남도에서 아시아 프레스 촬영.

◆ 밀레 명화와 같은 광경이 북한에도

프랑스 화가 밀레의 대표작 중 하나는 수확이 끝난 보리밭에서 농부들이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얼핏 보면 한가로운 전원풍경이지만, 19세기 프랑스 농민들이 얼마나 가난했을지 현대인에게도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을 들이민다.  

나는 가을 아침 중국과의 국경에서 밀레의 '이삭줍기'와 같은 광경을 몇번이나 목격하고 있다. 두만강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북한 논밭에는, 입이 큰 자루를 앞치마처럼 두른 농부들이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 쌀과 옥수수 이삭을 찾는 모습이 보였다.

북한 북부에 사는 취재 협력자가 「금년은 양상이 다릅니다」라고 11월말에 전화로 전해왔다. 도시 주민들이 농촌으로 '이삭줍기 원정'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아침마다 줄줄이 농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굶주리는 도시 주민들의 궁지에 몰린 행동이다.

다른 협력자가 도시 주민의 '이삭줍기 원정'의 구체적인 예를 다음과 같이 전해왔다.

아는 광산노동자의 집은 초등학생 남자아이까지 가족이 3명인데, 근무하고 있는 광산의 가동이 멈추어 부인이 집에서 소주를 밀조해 팔고 있었지만 단속이 심해져 단념했다. 남편은 월급도 배급도 나오지 않고 할 일도 없는 직장에 매일 출근하고 있다. 그래서 부인은 인근 농촌에 매일 가서 이삭줍기를 하고 있다. 그 가족은 꽃제비 직전 상태다.

평양 외곽의옥수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농촌 여성들 2008년 9월 아시아 프레스 촬영.

◆ 북한 주민은 인도적 위기에 직면

북한 내에는 점점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한 지 10개월째로, 무역과 관광이 멈췄고 그 여파로 수출품 생산과 물류 일감이 증발했다. 시장 장사도 바닥을 헤매다 보니 모두 현금 수입이 급감했다. 노인 가구 등 도시의 취약층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숨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11월 23일에 중국 세관 당국이 10월의 북중 무역 통계를 발표했다. 그 수치는 충격적이었다. 한 달 동안 수출입 총액은 고작 미화 165만 9000달러, 북한 수입은 25만 3000달러에 불과했다.둘 다 작년 대비 99% 감소, 괴멸 상태다. 국경 봉쇄로 3월 이후의 대중 무역은 대폭 감소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요즈음 들어 외화 부족으로 수입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중국 세관당국 공표의 북•중 간 무역통계. 1~10월 수출입 누계액은 전년대비 -76.2%였다. 1~2월은 합계액만이 발표. 아시아프레스 작성

◆ 쌀은 있지만 돈이 없어서 굶는다

한편으로 북•중 간에는 통계에 나오지 않는 물류도 있다. 6월 이후 대량의 식량과 코로나 방역장비가 중국에서 지원된 모양이다. 아사히신문은 식량 50~60만톤과 비료 55만톤, 중앙일보는 식량 80만톤이 물밑에서 지원됐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아마도 군, 경찰, 당, 정부기관, 군수산업 등 정권에 중요도가 높은 조직과 건설 동원 등에 우선 공급되고 일부가 시장으로 유입됐을 것이다.

북한 내의 취재협력자들에 따르면 어느 시장에서나 쌀과 옥수수 등 식량은 충분히 팔리고 있고, 당국의 통제도 있어서 가격이 안정돼 있다. 즉,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고 해도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어 음식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인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인도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골치 아픈 것은 역시 코로나다. 김정은 정권은 사람과 물자의 반입이 코로나 유입을 초래한다며 교역뿐 아니라 인도적 지원 수용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의 지원 제의에 대해서는 무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철저한 폐쇄와 격리와 이동통제로 코로나의 만연은 막을 수 있다지만 사람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국제기구와 주변국은 긴급 인도적 지원의 방법과 규모에 대해 북한에 협의를 제의하기 바란다. 김정은에게 조건 없는 회담을 제의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라면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이시마루 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