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진) 양강도의 한 병원 병실. 환자가 한 명 누워 있다. 2015년 4월 촬영 아시아프레스

북한의 지방도시에서 또다시 의약품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간단한 수술과 조치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5월 김정은 정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인정한 직후 지방도시에도 긴급히 중국산 의약품이 전달됐는데, 이것이 바닥이 났는지 의료 붕괴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북부 지역에 사는 복수의취재협력자가 전했다. (강지원 / 이시마루 지로)

◆ 마취약 없어 맹장 수술도 못해

"아프면 죽어야 된다"
"무상의료제 같은 건 사어(死語)가 됐다"

평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 지방도시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말이라고 한다. 최근 상황을 양강도에 사는 취재협력자 A 씨가 조사해 10월 중순 전했다.

A  "코로나가 확산했을 때는 한, 두 번 먹을 걸 나눠주고 중국산 해열제가 조금 들어왔는데, 지금은 어디서나 의약품이 부족하다. 최근 김형직군에서 맹장 환자가 마취제와 소독약이 없어 수술을 못하고 혜산시까지 후송됐는데 파열돼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가족이 현지 약국과 개인 약장사를 찾아다니며 약을 구해보려 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해 수술을 못했다고 한다.

10월 5일에는 혜신시 중심인 위연동에 사는 여섯 살 난 아이가 급성 설사병에 걸렸는데, 설사약을 못 구해서 탈수증상이 왔는데도 점적(링거)이 없어서 죽었다.

코로나 이전(2019년 이전)에는 받을 수 있었던 간단한 수술이나 치료조차도, 지금은 병원에 가도 소용없기 때문에 도병원이나 평양에 가야 한다는 것이 보통의 인식이 됐다. 돈과 지위가 있는 사람은 삼지연시 병원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곳의 병원은 다른 지역의 일반인은 받아주지 않는다. 삼지연에서도 의약품 부족이 심각하다고 한다"
※ 삼지연은 김정은이 주요해 관광 도시로서 개발돼 군에서 특별시로 승격, 종합병원도 신축됐다.

(참고사진) 국산 페니실린. 약효가 약하다고 평판이 좋지 않다. 가짜 약도 나돌고 있다고 한다. 2015년 4월 북한 국내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 약장사 단속으로 더 구하기 어려워져

A  "필요한 약은 병원 부속 약국에서 사는 게 규칙인데, 필요한 약이 들어오지 않는다. 병원에 가도 의사가 진찰할 때 '약을 구할 수 있느냐'라고 환자에게 물을 정도다. 의사는 왕진도 돌지만, 주사를 놓는 등 환자가 스스로 사서 준비된 경우뿐이다.

적어도 개인 약장사 단속은 그만해야 한다. 단속하는 안전국(경찰) 기동대를 보면,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다. 단속할 거면, 약을 어디선가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반발이 거세다. 혜산시에서는 지금 도와 시의 종합약국을 건설하고 있지만 약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전이라면 같은 아파트에서 약을 빌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무리다"

◆ '무상의료제'는 사어가 됐다

A "나라가 운영하는 약국에서도 현금으로 사야 한다. 그 약국에도 약이 없으니까, 스스로 파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단속이 심해져서 파는 사람이 없어졌다. '무상의료제' 같은 건 사어가 됐다.

국가적 대책이라며 침, 뜸, 부항 등을 이용하도록 주민들에게 통지해, 민간요법을 하는 사람에 대한 단속이 느슨해졌다. 돈벌이가 된다고, 잘 모르는 주제에 책으로 벼락치기 공부해서 치료한답시고 떠드는 사람도 있다"

◆ 9월에 대량 수입한 약은 어디에?

그렇다고 해서, 북한 당국이 의약품 수입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10월 후반 공표된 중국 세관 당국의 무역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항생제, 인슐린, 스테로이드제 등 의약품 약 430만 달러어치를 수입하고 있다. 또한 마스크 1000만 장 이상, 체온계 200만 개도 수입하고 있다. 10월 후반까지도 의약품이 지방도시에서 결정적으로 부족한 이유는, 수도 평양과 특정 기관에 우선 공급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5월에 코로나 감염자 발생을 인정한 후, 김정은 정권은 의약품을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병원과 약국에 공급된 약을 빼돌려 밀매한 자는 사형을 포함한 엄벌에 처한다는 사회안전성(경찰)의 포고를 5월 14일 자로 내놓았다. 북한 정보 전문 영문 미디어 'NK뉴스'가 평양에서 촬영된 사진을 입수해 공개했다.

함경북도의 취재협력자 B 씨는 이 포고가 나온 후 엄격해진 통제에 대해, 7월 초순 이렇게 보고한 바 있다.

"코로나가 유행했을 때 평양에서 대량의 약품이 들어왔지만, 병원과 약국, 의약품 판매소 외에는 매매가 금지되고 과거 약장사를 하던 사람들을 가택수색했다. 약이 발견되면 모두 몰수하고 출처를 엄격히 추궁했다. 그래서 약품을 빼돌렸던 간부들이 체포되고 출당(제명), 해직, 추방 등 엄격한 처벌이 내려졌다. 그 이후, 약은 현금으로 정규 약국에서만 살 수 있게 됐다. 전처럼 급한 병에 걸렸을 때 약장사에게 외상으로 사거나 아는 사람에게 싸게 사거나 하는 것도 못하게 됐다. 난감한 사람이 많다"

※ 아시아프레스는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반입해 연락을 취하고 있다.

북한 지도(아시아프레스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