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모르는 P씨의 가족들. 1980년대 초반 북한에서 촬영. (P씨 제공)

 

“작년 1월에 온 편지가 마지막이군요. 그 뒤로는 답장이 전혀 없어요. 벌써 모두 죽었는지도 몰라요.”

간사이 지방에 사는 재일조선인 P씨는 이렇게 한탄했다. 북한에 사는 혈육들의 연락이 뚝 끊긴 것이다.

2020년 1월 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이 시작되자 김정은 정권은 즉각 국경을 봉쇄하고 인적 왕래를 금지하고 무역의 대부분을 막았다. 중국을 경유하는 우편 업무도 끊겼다. 일본 우체국은 지난해 중반부터 대북 우편물을 받지 않고 있다.

관련기사 <긴급 인터뷰> 도시 봉쇄한 혜산시에서 사망자 발생. "약과 식량 부족으로 사람이죽었습니다"

P씨의 부모와 여・남동생 8명은 1960년대 재일교포 귀국사업으로 북한으로 건너갔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일본에 남은 P씨는 직장에 다니면서, 부업도 하고 꼬박꼬박 돈을 모아 60년 가까이 생활비용를 보내며 육친들을 지원해 왔다. 그럼에도 1990년대 굶어 죽은 여동생이 있다. 부모의 임종도 못 보았다.

“옆에 있어주지 못해 억울합니다. 코로나로 동생들과의 인연은 결국 깨지는 건지도 몰라요.”

P씨. 끝없는 원조를 계속하며 북한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탓인지 그녀의 말은 어딘가 체념조로 들렸다.

2021년 2월에 중국측에서 촬영한 양강도 해산시. 18일간의 도시봉쇄 조치로 외출도 일절 금지됐다."거리로부터 인적이 사라지고 있었다"고 촬영자. (사진 아시아프레스)

◆ 일본을 통해서 이루어진 편지거래가 단절

남한에 사는 J씨도 북한에 있는 가족이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 간사이 지방에서 태어나 10대였던 1970년대에 가족과 함께 북한에 건너갔다. 10년 정도 전에 탈북했다. 남겨 두고 온 아들과 딸에게 일본의 지인을 통해 송금을 계속해 왔다. 일본에서는 북한으로 우편도 돈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J씨는 ‘일본에 사는 큰아버지’ 행세를 하며 펜팔을 계속하고 있다. 딸들이 ‘큰아버지’ 앞으로 보내온 편지 뭉치를 보여 줬다.

매번 건강 챙기는 인사로 시작, 이사했다,새 직장으로 옮겼다 등의 근황 보고, 송금에 대한 감사, 그리고 “언젠가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라는 말로 끝맺음 했었다. 송금해 준 옷을 입고 기쁜 표정의 사진이 동봉되기도 했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전해져 온다.

일본을 통해 간신히 이어지고 있던 부모 형제와의 인연이 코로나로 끊어져 버렸다. “무사하다고 믿고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J씨.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보낼 돈을 모으고 있다.

◆ 언론, 외교관도 대폭 철수 … 국내 상황 암흑

북한 정부는 지난해 이후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의 출국을 종용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중국 러시아등 제한된 국가의 대사관과 WHO(세계보건기구) 등 소수의 국제기구 관계자뿐이다. 러시아 국영통신사와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사 주재원도 철수했다. 교도, AP, AFP 등 평양에 지국을 두었던 외신들은 1년이 넘도록 기자가 입국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신화사는 지난해 주재원이 철수했다는 정보가 있었다. 인터넷판에서는 2명의 기자가 계속해 평양 발의 기사를 쓰고 있지만, 3월 이후의 기사는 북한 국영 매체의 인용이나 중국 대사관 제공의 소식만 있을 뿐, 독자 기사, 사진은 전혀 없었다. 신화사 베이징 본사에 문의했더니 철수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북한에 사는 필자의 취재 협력자들은 코로나의 유행은 없지만, 과잉 방역 정책에 따른 물건부족과 경제 마비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정보는 단편적이다.

북한을 비추는 불빛은 점점 가냘퍼져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웃나라는 지금 칠흑으로 뒤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