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현대 국제 스포츠 역사에서 국가나 인구 규모에 비해 눈부신 실적을 자랑해 왔다. 체육을 정권의 위상을 떨치는 하나의 유력한 수단으로 삼아, 선수의 발굴 및 육성에 국가적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의 경제침체와 생활고에서 오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등의 난무가 북한 체육계의 기둥을 좀먹고 있다. 이 글의 집필자인 김국철 씨는 약 30년간 북한 체육계에 근무한 인물로, 2011년에 탈북해 지금은 국외에서 살고 있다. 체육 전문가로서의 귀중한 체험을 기고 받았다.  (기고 김국철 / 정리 리책)

<수수께끼 스포츠 강국의 내막> 기사 일람

 

운동복 차림에 시장을 활보하는 인민군 소속 4.25 체육단 선수들. 2008년 12월 평양시 사동구역에서. 촬영 리송희

 

북한 경기대회에서 심판은 공화국 심판이나 국제 경기 심판 자격 취득자가 주로 맡으나 해당 종목 협회에는 제대로 된 심판 기구가 없어서 대회 참가 팀의 감독들이 심판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판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부정 심판으로 인해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잦다.

특히 국민적 인기 종목인 축구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90년대 한 대학팀과의 경기에서 심판의 노골적인 부정 판정에 성난 관객들이 경기장에 난입하고 양쪽 팀과 응원단이 뒤섞여 대난투를 벌인 적이 있다. 그 결과 관객, 선수 모두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고 주심은 성난 관객들에게 맞아 다리 불구가 되었다.

90년대 중반 공화국 선수권대회에서는 북한에서도 강팀으로 알려진 4.25 남자 축구팀이 엉뚱한 승부 조작을 한 것도 있었다. 당시 경기 대회가 조별 연맹전(리그전)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준결승 경기에서 4.25팀이 다른 팀과 경기를 하고 있었다. 리그는 3개 이상의 팀이 경기를 갖고 그 결과에서 산출한 득실점 차로 순위를 가른다. 따라서 자기 팀의 성적은 다른 팀의 순위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을 노리고 4.25팀이 이익을 위해 '조절경기'를 한 것이다. '조절경기'는 한 팀이 다른 특정 팀을 탈락시키기 위해 자신의 경기에서 일부러 지거나 이기게 혹은 비기게 하는 승부조작 경기다.

따라서 이런 승부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리그전에서는 조별로 다른 장소에서 같은 날 같은 같은 시간에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4.25체육단은 조절경기를 위해 군의 무선 지휘 차량까지 동원해 다른 경기장에서 열린 경기를 몰래 '실황중계'한 것이다.

당시는 북한에 휴대전화가 사용되지 않을 때라서 군부만이 할 수 있는 부정행위였다. 승부조작 경기는 다른 팀의 경기 상황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 팀의 경기에서 막판에 어떤 반전이 일어날지 모른다. 승부조작을 완벽하게 하려면 자신들의 경기가 끝나기 전에 다른 조의 경기 결과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4.25팀에겐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미 심판들을 매수했기 때문에 별치 않은 동작에도 심판들이 자주 반칙을 주거나 여러 기회를 잡아 경기 시간을 끌며 다른 조의 경기가 먼저 끝나도록 조절하고 있었다. 노골적인 부정 심판에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이 항의 했지만 심판과 완전히 내통하고 있었기에 경기는 무난히 넘겼다. 이 경기 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의 공정성을 해치는 위법행위가 도를 넘은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대단히 높았다.

이런 부정을 없애기 위해 북한축구협회는 90년대 말에 전문 심판기구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경제난을 배경으로 한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있고 심판에 의한 조작 행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원인은 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북한에는 현재도 전문적인 심판기구를 가지고 있지 못한 종목 협회들이 많으니 북한 체육계 전반에 관한 문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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