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개수작업에 동원된 주민들. 당대회 전인 현재, 이러한 주민동원이 늘어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2013년 6월 북부지역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경제 마비로 생산활동이 가능한 공장을 손에 꼽을 정도인 북한에서 어떤 경제목표를 어떻게 수행하려는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70일 전투 시작 후 얼마되지 않아 북한 노동신문에는 '경제계획을 앞 당겨 수행했다'라는 기사가 연일 게재되고 있다.

3월 17일자 노동신문 1면에도 '상반년도 인민경제계획 빛나게 완수'라는 제목하에 평양시 안의 4개 공장이 상반년 계획을 수행한데 대해 선전했다. 북한 사회주의 경제계획이 어떻게 세워지는지 알 수 없으나 아직 상반기가 2달이나 남아있는 시점에서 계획 완수한 공장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역대 북한에서 진행된 각종 노력 경쟁 운동이 벌어졌을 때는 언제나 북한 권력에 중대한 국면이 조성되거나 체제 유지를 위한 필요성이 제기된 시점이 많았다. 처음 진행된 70일 전투는 김정일의 발기로1974년 10월 21일부터 연말까지 70일간 진행된 '증산전투'(※3)였다. 이 전투도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후계자로서의 명분을 갖추기 위한 업적으로 활용돼 70일 전투 후 그 성과를 바탕으로 김정일은 이듬해 2월 공화국영웅칭호를 받는 등 후계자의 입지를 굳혔다. 따라서 이번에 진행하는 70일 전투도 이후 '젊은 지도자의 탁월한 영도의 결과'로 돌릴 것은 분명해 보인다.

※1 : 현재 진행되는 '70일 전투'는 2월 24일 당 7차 대회를 앞두고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전체 당원에게 편지를 보내, 70일 전투를 벌릴 것을 호소했다. 이날을 70일 전투의 시작으로 보면 5월 6일 경까지 전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 : 2009년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 진행된 화폐교환. 구, 신 화폐의 교환비율은 현금의 경우 100:1, 저금한 돈의 경우 10:1이었다. 약1주간으로 정해놓은 화폐교환에서 북한은 가구당 교환 한도를 20만원으로 정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한 교환은 불허했다. 이 조치로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주민들의 돈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 화폐개혁 후 원화의 가치가 추락하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으로 북한의 시장 물가가 급격히 상승해 북한 주민은 생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3 : '70일 전투'의 시초는 30년 전인 1974년 10월 경제발전을 위한 '6개년 계획'(71∼76년)의 달성을 위해 김정일이 제시한 노력경쟁운동이다. 전투의 주 내용은 인민대중을 동원하여 경제발전에 필요한 내부예비를 적극 찾아내고, 기술혁신을 통하여 경제 모든 부문에서 '속도전'의 불길을 지피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 전투를 통해 전국 1천100여개 공장.기업소에서 6개년 계획을 2년 이상 앞당겨 수행하고, 공업생산은 전투 이전 보다 1.7배 늘어났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