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중심부의 모란봉구역 아파트가. 앉아 감자를 파는 젊은 여성

 

지난 5월에 진행된 조선노동당 대회 때 외신 기자 100명 이상이 북한의 수도 평양을 방문했다. 그 때의 영상을 많은 사람이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TV에서 연일 방영된 것은 훌륭한 고층 아파트 상가나 슈퍼마켓, 전선공장, 병원 등 근대적인 시설과 깨끗한 옷차림의 시민들이 휴대폰을 쓰는 모습이나 택시의 행렬. 그리고 '당대회를 기대한다', '김정은 원수님만 계시면 우리는 괜찮다' 등 당과 지도자를 예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였다.

요컨대 김정은 정권이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름다운 평양'과 '지도자를 경모하는 인민'이 였다고 생각해도 좋다. 외국 언론의 취재는 철저히 관리된다. 50년 전부터 큰 변화는 없다.

심각한 기근 속에도 '아름다운 평양'의 연출은 유지

나도 1995년에 평양을 한번 방문한 적이 있다. 5일 간의 여정은 계속 집단행동이었고 어디를 봐도 역시 '아름다운 평양'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 북한에서는 경제혼란에 의해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미증유의 사회 패닉이 시작된 것이다.

평양 체류 중 나는 죽는 사람까지 나온다는 사회 혼란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사람의 표정에 생기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전국에 퍼져 있을 암시장이도 방황하는 꼬제비(노숙자)의 모습도 조금이라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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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지않는 '아름다운 평양'뿐이었다. 외국인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당국에 의해 연출된 평양밖에 볼 수 없는 '구조'다.

1997년, 98년에 지방 도시 몇군데를 방문한 기회가 있었지만, 경제 특구인 라진 이외에 외국인에게 행동의 자유가 전혀 없기는 마찬가지 었다. 자고 있을 때 이외에는 언제나 '안내'라는 이름의 감시가 붙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북한 방문을 지향하는 것을 단념했다. 그 나라에서는 외국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벽 건너편에 북한 문제의 핵심이 있을 것이다.

그 벽 안쪽을 알고 취재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사람들 뿐이다. 나는 그들, 그녀들과 만나 협력할 것을 목표로 했다.

장소는 중국. 대상은 비즈니스나 친척 방문으로 출국해 온 사람, 비합법적으로 국경인 강을 월경(越耕)해 온 사람들이다. 이후 십수 년 나는 북한 사람들과 협동, 공동 팀을 만들어 벽 너머를 취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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