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미국은 무조건 이기라'

북한 정권은 국제 경기에 대해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상대가 적대 국가의 팀인 경우 더욱 그렇다. 김정일의 말씀에는 '남조선과 미국을 비롯한 팀과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라고 하고 있는 것 만큼 지상의 명령이다.

이것이 감독이나 선수에게 큰 심리적 압박감을 주어 최대한의 실력을 발휘하는데 장애가 된다. 경기가 가지는 정치적 무게 때문에 이겼을 경우 정치적 및 물질적으로도 큰 보상이 따르지만 패자는 심한 경우 현직에서 철직, 무보수 노동 등의 제재가 따른다. 경험이 없는 젊은 선수들 중엔 이러한 정신적 부담 때문에 긴장된 나머지 유니폼에 오줌을 싸는 선수도 있다.

국가가 필승(必勝)을 기대한 대회의 하나로 2006년 축구 월드컵 예선 경기가 2005년 3월 30일 북한에서 진행됐다. 아시아 최종 예선으로, 북한과 이란 팀이 평양에서 경기를 진행했을 때다. 본인도 이 경기를 관람했지만 경기 시작 전 체육성 간부로부터 들은 바로는 김정일이 이 경기에 대해 거듭 언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날에는 체육성 간부에게 경기가 국내에서 진행되고 본선 진출이 걸린 경기인 것 만큼 '무조건 이기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정리자 주 2006년 축구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리그전)에서 북한 대표팀은 일본 등과 함께 '그룹B'에 포함됐다. 첫째, 두 번째 경기에서 연패를 당해 그룹 최하위에서 탈출을 시도해 나선 것이 이란과의 홈 게임이었다.

그 간부에 따르면 김정일은 내부적으로 이 경기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심판들과 대회 임원들과의 '사업'을 잘할 데 대한 '말씀'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해당 담당자들이 제 3국에서부터 대회 임원 등에게 뇌물을 먹이기 위한 작전을 전개했는데 결과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축구 전문가들과 북한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을 듣고 있었다. 그들의 평가는 '이란과의 경기는 몹시 힘겨운 경기로 이길 확률은 적다. 하지만 자기 땅에서 경기를 진행하는 만큼 여러 이점을 활용하고 요행수도 겹치면 어떻게 된다'라는 것이었다.

또 경기 당일 체육상(체육부장관. 박명철이었다고 기억한다)이 선수 대기실에 난데없이 나타나 '이번 경기만은 어떡하든 이기라. 이기면 모두 1만 달러씩 주겠다. 이기지 못하면 비기기라도 하라. 여기 돈을 가져 왔으니까'하며 현금이 가득한 가방까지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경기는 지고 말았는데 그 경기에서 이겨 돈을 받았다면 북한 축구 국제 경기 사상 최고의 상금이 됐을 것이다. 참고로 경기 결과에 대해서 김정일이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리자 주 북한 대표 팀은 2006년 축구 월드 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바레인에 1승을 거두는 데 그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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