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는 축구다. 시장에서 중국산 축구공을 팔고 있다. 2012년 11월 양강도에서 촬영 (아시아프레스)

 

통제불능이 된 관객

어쨌든 경기를 보고 싶은 시민들의 욕구는 놀라울 정도였다. 경기장이 초만원이 된 데는 티켓이 없는 사람들이 대거 밀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객석과 통로까지 관객으로 꽉 찼지만 경기장 주변엔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동원된 보안원(경찰) 만으로는 질서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경기 시작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경기장 밖에 몰려든 시민들이 점차 난폭해지는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장 각 출입구의 철문을 부수고 안으로 난입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인민보안성(경찰청)에서 증원된 보안원들이 각 입구마다 몰려든 시민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커다란 군용견 '셰퍼드'까지 동원해서야 진정됐다. 하지만 패배라는 시합 결과에 분노한 관객들의 난동까지는 막지 못했다.

정리자 주 : 이 경기 후에는 심판의 판정에 분개한 관객들이 의자를 그라운드에 던지거나 이란 대표 팀을 태운 버스를 둘러싸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북한은 FIFA로부터 2만 스위스 프랑의 벌금을 부과 받고, 2005년 6월 8일에 평양에서 예정됐던 일본과의 경기를 제 3 국(태국)에서 무관중으로 진행해야 하는 징계를 받았다.

경기 후 시민들은 보안원들의 엄포에도 해산하지 않고 경기장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군중이 분격해 이렇게 날뛰는 것을 본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라고 놀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민들이 소동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해외 팀과의 경기 관람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이지만, 나와 같은 체육 전문가들은 북한 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 지 알고 있었기에 경기의 승패도 사전에 직감할 수 있어 비록 패하더라도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다르다. 해외와의 수준 차이 등은 고려 없이 북한이 지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리마 시대의 축구 전설'(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 신화)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이 주체 조선의 축구 팬들은 매우 '뜨거운'것이 특징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정세가 삼엄해도 국내에서 중요 국제 경기가 진행될 때 마다 구름처럼 모여든다.

이 2005년의 이란전 때 벌어진 소동의 크기는 설명이 부족한 정도다. 당시는 90년대의 식량난을 극복하고 국민 개개인이 문자 그대로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재건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국민의 억눌렸던 감정이 한번에 폭발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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