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버려진 조개껍데기의 속을 파고 남은 살을 모으고 있다. 팔면 약간의 수입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황해북도 사리원시. 심의천 촬영)
여성들이 버려진 조개껍데기의 속을 파고 남은 살을 모으고 있다. 팔면 약간의 수입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황해북도 사리원시. 심의천 촬영)

 

◇김정은 씨에 의한 대책지시도 엉터리...기근은 '인재(人災)'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은 황해남도에서 심각한 기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황해도의 당 중견간부 김 씨는 이렇게 말한다.
"4월, 김정은의 귀에 '황해도의 농민이 굶주림 때문에 움직이지를 못해 농사일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현지보고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곧 군대에 대책마련을 지시했다고 상부로부터 들었습니다" 명령을 받은 군대는, 전시용으로 저장하고 있던 식량의 일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6월 농번기가 되자 '2호 창고'로 불리는 전시용 비축물자의 창고에서 하루에 옥수수 500그램이 배부됐습니다. 하지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일하는 농장원 뿐이었기 때문에 500그램으로 한 세대가 먹어야 할 집도 있었습니다. 그런 '지원'조차도 며칠 만에 끝나버렸습니다" (농촌 간부 림씨) 다른 황해도 주민의 말을 들어봐도, 기근발생의 대처는 역시 '500그람', '며칠 간'에 지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최고지도자의 지시는 '언 발에 오줌누기'었지만, 원래 내린 지시 자체가 터무니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황해도의 기근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은 국가에 의한 '군량미', '수도미' 명목의 농민수탈에 있었던 것인데도, 그 대책마련을 군대에게 지시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임시 방편으로, 인명을 구하는 해결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기근에 허덕이는 농민들에 대해 그 후 국가로부터의 어떠한 원조도 없었다는 것이 증언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지금까지 봐 온 것처럼 올해의 '황해도 기근'은 이미 피폐의 극치에 있던 농민이 폭력적인 수탈을 받아 한계를 넘음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정치이벤트의 연속으로 농민이 곤궁함이 계속 무시돼 왔던 것이 피해를 확대시켰다. '황해도 기근'을 '인재(人災)'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김정은 정권은 시작부터 크게 실패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6월을 경계로, 황해도 기근은 일단 고비를 넘은 듯 하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는 올해의 흉작으로 앞으로의 생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다음 회는 6월 이후의 상황을 전함과 동시에 북한의 정치, 경제 상황을 분석한다. (계속)

[2012 황해도기근] 기사일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