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会主義国家の歴史的経験を見ても、スターリンの死亡後のソ連では、新しく修正主義路線が出たし、毛沢東の死亡以後中国では開放改革路線が出発した。先行の時代を差別化し、それ以前の時代のライフ・サイクルに生存した偉人の名前で歴史の一幕を終わらせたのである。
いくら否定しても、北朝鮮でもそのような'偉人現象'は現れたのである。すなわち、その表面的な最大の特徴が、まさにコチェビの大量発生であった。それを首領の死亡抜きで理解することも、説明することもできないのである。

1991年に社会主義政権が崩壊したソ連で、コチェビの大群が発生したと、他ならぬ北朝鮮が大宣伝し、その原因は国家制度の破壊にあると冷静に解釈した。そして、だからこそそのような破壊から国を守ろうと訴えた。

皮肉にも、その後北朝鮮で悲惨なコチェビの大群が発生した。北朝鮮の国家制度が破壊したと見なくても、確かにそれは金日成首領死亡直後から発生したのは動貸せない事実である。北朝鮮がソ連の社会主義崩壊のときに大宣伝したのと匹敵する出来事が北朝鮮でも発生したのである。
その原因は疑う余地もなく首領の死亡であった。その結果、国家の食糧配給制などが崩れて、食糧分配に危機が発生したのだ。その末端の現象として、弱者のコチェビの大群が発生したのであった。 (200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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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견해에, 북조선에서 일어난 이 위기가 자연재해 등에 의한 식량생산량 감소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부족설"이 있다. 물론 이것도 일반적으로 현상에 대한 리론적 또는 분석적 견해의 한가지로서는 타당한 주장일수 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는 전적으로 이를 부정한다. 아사나 위법, 코체븨의 선택은 사회적 요구였던 것이다. 연구조사가, 현존하는 대량의 코체븨 내지 탈북자를 즐겨 선택한 개인을 열심히 찾을 필요는 없을것이다.

다음의 두 가지 명백한 사실도 이 "부족설"을 부정하고 있다. 첫째로, 북조선은 현시대에도 식량에 대한 국가독점 배급제도를 94년까지 유지 실시하여 온 유일한 나라이다. 전쟁이나 재해로 인하여 식량이 부족할 때, 국가가 일시적으로 수립하는 비상제도가 바로 배급제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북조선 건국 이래 계속된 배급제의 실시 자체가 90년대 일시적 식량 "부족설"을 부인한다. 수자적으로 본다면 벌써 7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보름주기에 이틀배급을 량정상 삭제하였다. 즉 전국 소요 공급량의 13%이상 부족을 국가가 인정하고 강한 긴축정책을 집행하였던 것이다. 그 심각성은 김일성 국가주석이 단연 "농업사령관"으로 되고 식량증산에 나서서 "밥을 먹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농사에 동원"될것을 의무화한 "주체농법"정책을 실시할 정도였다.

보통 년간4개월은 전국이 다 농촌에 집중동원되였다. 주민이전도 농촌 일방향적으로만 엄단하고 도시주민은 계통적으로 농촌에 강제 이주시켰다. 생산자인 농민들도 곡물만은 배급제에 구속시켰다. 구입경로 여하를 불문하고 곡물 2중 수급(각자 국가 공급노르마 이상의 획득)은 총살형에 해당, 그만큼 엄중히 제정, 관리되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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